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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덕 묘

□ 소재지 : 가남읍 삼승리
□ 시 대 : 조선

김구덕(?~1428)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의 현손이고 상락군(上洛君) 김묘(金昴)의 아들이며 급암(及庵) 민사평(閔思平, 1295~1359)의 외손자(外孫子)이자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의 동생이다. 19세 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다가 사헌부규정(司憲府糾正)을 지냈고, 1396년(태조 5) 형조의랑(刑曹議郎)에 올랐다. 그뒤 외직으로 나가 해주(海州)·광주(廣州)·청주(淸州)의 목사를 역임하였으며 1411년(태종 11)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가 되었다. 이때 딸이 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명빈(明嬪, ?~1479)이 되었으므로 벼슬이 올라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이후 한성부윤을 거쳐 천추사(千秋使)로 명(明)에 다녀왔으며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1427년(세종 9)에는 손녀가 세자빈(世子嬪)이 되어 휘빈(徽嬪)에 봉해지면서 2대에 걸쳐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게 되자, 조선초기 권문세족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시호는 안정(安靖)이다.

묘는 삼승리(三承里) 헌터마을의 뒤쪽 구릉에 남향(南向)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의 봉분 앞에 방부규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19)가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상석이 놓여 있다. 묘표는 하나의 화강암을 다듬어 제작하였는데, 방부에는 아무런 문양도 장식하지 않았다. 비신(높이 100.5, 폭 31.5, 두께 18)의 전면에 이끼가 껴 있으나 큰 해서(楷書)로 쓴 “증시(贈諡) 안정공(安靖公) 김구덕지묘(金九德之墓)”의 글자는 뚜렷하여 김구덕의 봉분임을 파악할 수 있다. 뒷면에는 음기나 건립연대를 표기하지 않았지만, 양식으로 추정컨대 세종대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상석(높이 17, 폭 141, 두께 84.5)은 고석(鼓石) 대신에 직사각형의 받침돌 2개로 받쳐놓았다. 왼쪽의 봉분 앞에도 동일한 양식의 묘표(총 높이 128)와 상석(높이 15, 폭 117.5, 두께 89)을 배치하였다. 비신의 앞면에 “장숙택주(莊淑宅主) 신씨지묘(辛氏之墓)”라고 썼으나 뒷면에는 아무런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 한편 묘역의 중앙에 세워진 장명등(높이 52, 폭 36.5, 두께 36.5)은 개석(蓋石)과 화창(火窓)이 훼손되었으며 박락이 심한 실정이다. 그리고 묘역의 좌우에 시립하고 서 있는 문인석(높이 151, 폭 40, 두께 33)은 복두공복을 착용하고 있으나 하단이 많이 매몰되어 있다. 공복의 소매 자락이 홀(笏)을 쥔 양손을 감싸고, 복두 뒤쪽의 각(脚)이 교각(交脚)을 이룬 양식상의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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