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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집 묘

□ 소재지 : 점동면 원부리
□ 시 대 : 조선

권집(1431~1457)은 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화숙(和叔)이다. 길창군 권규의 손자이자 예조판서를 지낸 권총(權聰, ?~1480)의 아들이며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 1403~1456)의 사위이다. 1450년(세종 32) 생원(生員)이 된 후 관직에 나아가 사선시직장(司膳寺直長)을 역임하였다.

묘는 원부리 오미마을의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묘역에는 상석과 문인석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진설되어 있다.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높이 224, 폭 60, 두께 64)은 안정된 신체 비례에 부드러운 의습선(衣褶線)을 갖추고 있다. 입 주위가 약간 튀어나오고, 옷소매가 손을 모두 감싼 것이 양식상의 특징이다. 봉분 앞에 2좌의 상석(높이 26, 폭 329, 두께 110)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앞에 방부하엽 양식의 묘표(총 높이 202)가 건립되어 있는데, 입석의 위치가 특이하여 주목된다. 방부에는 복련(覆蓮)을 양감 있게 조각하였고, 하엽은 잘 말아 올린 후 연봉(蓮峰)을 세웠다. 화강암의 비신(높이 110, 폭 56, 두께 21) 앞면에 피장자의 신원을 쓰고, 뒷면에 매장한 기사를 간략히 기록하였으나 음기나 건립연대는 따로 새기지 않았다. 조성 시기는 부인이 돌아간 다음해인 1482년(성종 13)으로 추정된다.

묘역의 우측 아래에 방부운수 양식의 묘갈(총 높이 245)이 서 있다. 운수의 앞뒤에는 구름 문양을 짜임새 있게 잘 장식하였다. 대리석 비신(높이 148, 폭 80, 두께 23)의 앞면에는 피장자의 신분을 큰 해서로 “선교랑(宣敎郞) 행(行) 사선직장(司膳直長) 권집지묘(權輯之墓) 의인(宜人) 서원한씨지묘(西原韓氏之墓)”라 쓰고, 뒷면에 호조참판(戶曹參判) 권건(權健 1458~1501)이 지은 묘갈문을 각자(刻字)하였다. 갈제(碣題)가 없지만 전액(篆額)이 “직장(直長) 권후(權侯) 묘갈(墓碣) 음기(陰記)”라 되어 있어 묘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문과 전액을 쓴 인물은 미상이며, 건립연대는 “홍치(弘治) 기원지사년(紀元之四年, 1491, 성종 22) 삼월(三月) 일(日)”이다.

이외에 권집의 묘 주변에는 예산현감(禮山縣監) 권침(權忱), 군수(郡守) 권회(權懷, 1455~1494), 병조참판 권눌, 남부참봉 권숙 등의 묘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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