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문화유산 분묘유적 경~김 권일형 묘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권일형 묘

□ 소재지 : 강천면 강천리
□ 시 대 : 조선

권일형(1700~?)은 영조대(英祖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신경(信卿)이다. 충숙공(忠肅公) 권절(權節, 1422~?)의 후손이자 예조참판(禮曺參判) 권우(權堣, 1610~?)의 증손이고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권익문(權益文)의 아들이며 동강(東岡) 조상우(趙相愚, 1640~1718)의 외손이다. 1723년(경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이어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1728)와 정희량(鄭希良, ?~1728) 등이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 ?~1729)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도순문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 1673~1728)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후 설서(說書)와 필선(弼善) 등을 지내고 1746년(영조 22)에는 의주부윤이 되었으며, 1751년(영조 27)에 승지를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강천리 상동 마을의 뒷산 구릉에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0, 폭 119 두께 63), 상석(높이 47.5, 폭 157, 두께 94.5), 고석(높이 38, 폭 42, 두께 42), 향로석(높이 60, 폭 38, 두께 32), 망주석(높이 225, 폭 39, 두께 39.5), 석양(높이 63, 폭 44, 두께 133)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직사각형의 석재를 향로석으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망주석 앞쪽에 놓여 있던 장명등은 근래에 도난당하여 대석(臺石)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봉분의 우측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79)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높이 131, 폭 58, 두께 28)의 앞면에 큰 글씨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겸동지의금부사(兼同知義禁府事) 권공일형묘(權公一衡墓) 정부인(貞夫人) 임천조씨(林川趙氏) 부좌(祔左)”라고 단정히 써서 피장자의 신원만을 밝혀 놓았을 뿐, 나머지 면에는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았다. 방부(높이 48, 폭 99, 두께 67)는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으나, 문양은 일체 장식하지 않았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