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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진 묘

□ 소재지 : 강천면 간매리
□ 시 대 : 조선

곽승진(1418~1477)은 성종대(成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희철(希哲)이며 호는 존양재(存養齋) 또는 약천(藥川)이다. 연담 곽예의 7세손이자 단산군수(端山郡守)를 지낸 곽음(郭廕, 1398~1474)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라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살이 3년을 지냈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456년(세조 2) 교도(敎導)를 제수 받았으나 관직에는 뜻이 없어 나가지 않았다.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이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과 나이 차를 뛰어 넘어 교우 관계를 맺었으며 동륙산인(東陸散人)이라 자칭(自稱)하였다. 청우(靑牛)를 타고 국내의 명승지를 유람하다가 원주(原州) 간매촌(看梅村, 지금의 간매리)에 이르러 소가 일어나지 않자, 그 자리에 집과 누각을 지은후 ‘존양(存養)’이라 이름하고 제영(題詠)하니 당시의 문인들이 이를 듣고 많이 효창(效唱)하였다고 전한다.

강천면사무소에서 당고개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우측으로 청주 곽씨 재실인 존양재(存養齋)가 있다. 곽승진 묘는 존양재 좌측의 송전산(松田山) 구릉에 자리 잡은 청주곽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묘역은 전후분(前後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쪽의 곽승진 봉분 앞에는 완전 마모된 방부하엽(方趺荷葉) 양식의 묘표(총 높이 110)와 상석(높이 22, 폭 125, 두께 86)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쪽의 부인 봉분 앞에는 곽승진과 거의 동일한 양식의 묘표(총 높이 97)와 최근에 추설된 향로석, 상석, 고석, 향로석이 있으며 그 우측에는 옛 상석으로 추정되는 석물이 놓여 있다. 묘표의 마모가 심하지만 비신(높이 71, 폭 36.5, 두께 14)의 앞면에서 “해평윤씨(海平尹氏)…”라는 기사는 확인된다. 묘역의 좌우에는 복두공복을 착용한 2쌍의 문인석이 시립하고 서 있다. 안쪽(높이 175, 폭 41, 두께 36)과 바깥쪽(높이 172, 폭 43, 두께 39)의 문인석 얼굴이 모두 입체감 있게 조각된 반면에 신체(身體) 굴곡선은 거의 표현되지 않은 양식상의 특징이 있다. 한편 묘역의 우측에는 최근에 중수한 묘표가 세워져 있다.

묘역 바로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253)가 건립되어 있다. 완산(完山) 이근원(李根元, 1840~1918)이 근술(謹述)한 비문을 덕수(德水) 이용신(李容信)이 근서(謹書)하여 비신(높이 168, 폭 61, 두께 27)의 사면(四面)에 각자하였다. 비제(碑題)가 없으나 전액이 “유명조선(有明朝鮮) 성균생원(成均生員) 약천(藥川) 곽공(郭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되어 있어 곽승진의 신도비임을 파악할 수 있지만 쓴 사람은 기록하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영력오소양동분선찰월(永曆五昭陽東奮善鍘月) 일(日)”이라 되어 있어 1913년으로 추정된다. 방부(높이 40, 폭 102, 두께 73)와 개석(높이 약 45, 폭 103, 두께 69)은 화강암을 다듬어 사용하였다.

이외에도 청주곽씨세장지에는 창신교위(彰信校尉) 곽연종(郭連宗, 1444~?), 인산진병마절제사(麟山鎭兵馬節制使) 곽문백(郭文伯, 1475~?), 병절교위(秉節校尉) 곽량(郭良, 1501~1564), 지릉참봉(智陵參奉) 곽문보(郭文寶, 1500~1569), 헌릉참봉(獻陵參奉) 곽공진(郭拱振, 1541~1607), 대사간(大司諫) 곽건(郭建, 1562~1604), 장사랑(將仕郞) 곽흥문(郭興門, 1582~1656),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곽제태(郭齊泰, 1629~1715), 통선랑(通善郞) 곽희원(郭熙原, 1653~1682) 등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으나 몇 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원형이 변형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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