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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혼 묘

□ 소재지 : 흥천면 상백리
□ 시 대 : 조선

경혼(1498~1568)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언회(彦晦)이다. 청원부원군 경복흥의 후손이자 삭녕군수 경면의 손자이며 지평 경세청의 아들이다.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문인으로 1522년(중종 17) 진사가 되고 1533년(중종 28)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가 1544년(중종 39) 사간원사간으로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화를 입은 조광조(趙光祖, 1482~1519) 등의 신원(伸寃)을 청하였다. 홍문관직제학에 재직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548년(명종 3) 병조참의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 1551년(명종 6)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승려 보우(普雨)를 중용하고 선교(禪敎) 양종(兩宗)의 선과(禪科)를 설치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뒤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묘는 상백리 건너말 동측의 부족산 줄기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3, 폭 173, 두께 106), 고석(높이 24, 폭 31, 두께 31), 상석(높이 29, 폭 173, 두께 106), 향로석(높이 51, 폭 50, 두께 35), 망주석(높이 218, 폭 69, 두께 48), 제주병석(높이 55, 폭 90, 두께 53), 동자석(높이 107, 폭 36, 두께 30), 문인석(높이 222, 폭 66, 두께 55), 장명등(높이 189, 폭 78.5, 두께 78), 차일석(높이 15, 폭 30, 두께 17), 배설석(排設石, 높이 13, 폭 106, 두께 60)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은 당당한 체구에, 얼굴이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동자석은 향꽂이를 양손에 쥐고 있으며, 망주석의 상단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장식하였다. 그리고 다각지붕을 얹은 장명등의 화사석(火舍石)에는 사방에 화창(火窓)을 마련하였다. 제주병석은 제사 때 쓰는 술병을 올려놓는 이색적인 석물이다.

원형(圓形)의 호석을 두른 봉분 앞으로 1964년에 세운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의 묘표가 서 있다. 방부는 예전 것을 사용하였으나, 비신과 개석은 신설한 것이다. 오석의 비신 전면에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題學) 겸동지중추부사(兼同知中樞府事) 경공혼지묘(慶公渾之墓) 배(配) 정부인(貞夫人) 양천허씨(陽川許氏) 부좌(祔左)”라고 썼다. 한편 묘역 아래에는 외손(外孫) 파평(坡平) 윤증(尹拯, 1629~1714)이 지은 묘갈문을 각자하여 1939년에 조성한 묘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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