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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구 가옥

□ 소재지 : 대신면 보통리 190-2
□ 시 대 : 조선(1753년)
□ 지정사항 : 중요민속자료 제126호

김영구 가옥은 1999년 5월 13일 개와(蓋瓦) 수리 공사중에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계유(三癸酉) 이월(二月) 이십칠일(二十七日) 사시(巳時) 상량(上樑) 임좌(壬坐) 병향(丙向)”이라는 상량문이 확인되었다. 이를 서력(西曆)으로 환산하면 1753년(영조 29)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250여 년 전에 지어진 경기도 동부지역의 전형적인 사대부(士大夫) 가옥임을 파악할 수 있다. 하산군(夏山君) 조경인(曺景仁, 1555~1615) 때부터 보통리에 세거해 오던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의 조명준(曺命峻, 1728~1796)이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창녕 조씨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해낸 조선후기의 명문거족으로 여주를 대표하는 성씨 중의 하나이다. 조명준의 사후에는 그 아들 이조판서 조윤대(曺允大, 1748~1813)를 비롯하여 이조판서 조봉진(曺鳳振, 1777~1838), 문정공(文靖公) 조석우(曺錫雨, 1810~1878), 독립운동가 조성환(曺成煥, 1875~1948) 등의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였다. 그러나 조성환의 부친인 진사(進士) 조병희(曺秉憙, 1855~1938)가 독립군의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재산을 처분할 때 집도 함께 매각하면서 타인의 수중으로 넘어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같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옥이므로 가옥의 정식 명칭도 ‘독립운동가 조성환 가옥’으로 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 된다.

가옥은 남동향하고 있으며, 21칸 규모로 ㄷ자형 안채와 13.5칸 규모의 ㅡ자형 큰 사랑채, ㅡ자형 작은사랑채,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안채는 전면 툇간이 있는 입식부엌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부엌, 아랫방, 방, 광이 있고, 오른쪽에 화장실과 건넌방, 부엌, 광이 있다. 1970년 가옥주가 집을 매입한 후에 대청은 입식부엌으로, 건넌방의 윗방은 개량식 화장실로 개축하였다. 툇간에 면한 입식부엌 전면에는 알루미늄 샷시를 달아놓아 기존의 들어열개문은 항상 열어놓고 있다.

안채의 기단은 다듬은 장대석 외벌대이고, 바닥은 강회다짐으로 마감을 하였으며, 주초는 다듬은 방추형 주초이다. 가구는 5량구조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홑처마이지만 추녀는 추녀위에 사래를 건 알추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큰사랑채는 전면 툇마루가 있는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벽을 튼 방과 아궁이간, 우측에 큰사랑방과 대문간이 있으며, 사랑방 전면 툇마루 남쪽에는 전면으로 돌출한 누마루가 있다. 사랑대청 우측방은 작은방 2개를 터 넓게 사용한다. 기단은 장대석 2벌대이고 바닥은 강회다짐이며, 주초는 방형으로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누마루의 주초는 방형의 장주초이다. 가구는 5량구조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작은사랑채는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뒷면은 쪽마루를 달아 놓았으며 작은사랑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로 세워쌓기를 하였고 기단은 흙으로 돋우었으며 초석은 다듬은 방형주초이다. 가구는 5량구조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뒤뜰은 각종 나무가 울창한 뒷산과 연결되어 산의 아름다움을 집안으로 유도하고 있으며 동쪽 둔덕의 소나무는 고색창연한 집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집은 경기지역에 드문 폐쇄적인 공간구조, 잘 가공된 석재, 단면은 작으나 세련되게 다듬어진 목부재들, 시원하게 뻗어있는 추녀 등으로 미루어 경장(京匠)이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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