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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완양부원군 이충원 호성공신 녹권

□ 소 재 지 : 산북면 백자리 244
□ 시 대 : 조선 1604년(선조 37)
□ 지정사항 : 보물 제874호

교(敎)

충근정량효절협책 호성공신 보국 숭록대부 완양부원군 이충원 서(書)

왕이 가로되 나라가 어지러워져야 정성스러운 신하들을 알 수 있는데, 그대는 부기(負覊)의 공적을 드러내어 모토(茅土)1)에 명수(名數)를 가하였다. 이에 공로(功勞)에 보답하는 문장을 받들어 지었으나 더불어 공을 다투지 못하니 감히 (그 공에) 보답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각건대 경은 오래된 가문의 청전(靑氈)2)이며, 옥진(임금의 가문)의 여파이다. 성품이 단아하고 중후하며, 강직(剛直)하여 일찍이 재상의 그릇(직책)에 추대되었고, 총명하고 자량하여 모두가 얼굴과 기상이 단아한 사람이라고 칭하였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하늘에서 난 것같이 하고 관직에 임하여는 청렴한 것을 자신의 규율로 하였고 자획(字畫)은 신(神)의 경지에 들어갔으며, 수적(手蹟)3)보첩(寶牒)4)에 많이 남아 있다. 문장이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이름이 으뜸으로 꼽혔으며 대각(臺閣)의 역양(歷敭)5)에 바람을 일으켰다(이름을 냈다). 조칙의 출납을 담당하였을 무렵에 높은 하늘의 부조(不吊)를 만나 섬나라 오랑캐의 흉사를 당하였으니 일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누란(累卵)의 시세(時勢)로 (말미암아) 급급하게 계책을 내어 어쩔 수 없이 빈(邠)6)을 떠나는 행색이 총총(급박)하였다. 모두가 이에 처자를 보호하고 (자신의) 몸을 온전히 하려 하였는데 나를 따른 자 누가 능히 죽을 힘을 내어 호가하지 않았겠는가. 나를 버리는 것은 (부모를) 버리는 것과 같다. 그대의 적심(赤心)7)이 다른데 있지 않았으니 어찌 능히 백수(늙은이)로서 걸어서 천만 리를 건넘에도 자신을 잊고 순국하는 정성이 있었다. 서로 초망(험란한 길) 사이를 따라옴에도 임금이 위태한 것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절의(節義)는 비록 군신의 구분(분별)이 있으나 정리는 실로 부자간의 친함과 같았다. 눈물을 뿌리고 격앙하여 (나라를) 회복하는 시책을 몇 차례 진설(陳說)하였고, 장차 명령을 받아 진퇴(進退)할 적에도 또한(나를) 대접하고 보좌하는 수고가 많았다. 다행히 명나라의 권위에 힘입어 나라를 회복하였으니, 참으로 제공(諸公)8)선력(宣力)9)에 말미암은 것이다. 몽진(蒙塵)으로 거처할 바를 잃자 환란(患難)을 더불어 서로 같이하였다. 공(功)을 정하고 봉책을 행함에 안락(安樂)을 더불어 함께 누리니 기쁘다. 이에 호성공신(扈聖功臣) 이등(二等)에 책훈(策勳)하고 도형(圖形)은 후세에 전하며, 품계와 작위를 2자급 승진시켜 준다. 그 부모, 처자 역시 2자급을 승진시켜 준다. 아들이 없으면 생질이나 사위에 1자급을 승진시켜 준다. 적장손(嫡長孫)은 (작위를) 세습하여 그 녹을 잃지 말게 하며, 죄 지은 것은 영세(永世)에 미치도록 용서하라. 아울러 반당(伴倘) 6인 노비 9구, 구사(丘史) 4명, 전 80결, 은자(銀子) 7냥, 표리(表裏) 1단, 내구마 1필을 수령하여 먹게 할 것이니 피하지(사양하지) 말라. 경이 비록 분내(分內)10)의 작은 공이라고 하더라도 곤경에서 능히 나를 부축하였으니, 곧 말할 수 없는 지극한 뜻이 있었다. 재물이 비록 박하나 의례만은 많다. 오호라. 산하에 시종(始終)을 맹세하였으니 어찌 2등, 3등으로 그 덕(德)을 용납하겠는가. 집안과 나라가 휴척(休戚)11)을 함께 할 것이고 영원히 억만 년을 보존할 것이니 고로 이 교시(敎示)를 생각하여 마땅히 모두 알 것이다.

  • 1등

    이항복(李恒福), 정곤수(鄭崐壽)

  • 2등

    신성군(信城君) 후(珝), 정원군(定遠君) 부(琈), 이원익(李元翼),
    윤두수(尹斗壽), 심우승(沈友勝), 이호민(李好閔),
    윤근수(尹根壽), 유성룡(柳成龍), 김응남(金應南),
    이산보(李山甫), 유근(柳根), 이충원(李忠元),
    홍진(洪進), 이괵(李嘓), 유영경(柳永慶),
    이유징(李幼澄), 박동량(朴東亮), 심대(沈岱),
    박숭원(朴崇元), 정희번(鄭姬藩), 이광정(李光庭),
    최흥원(崔興源), 심충겸(沈忠謙), 윤자신(尹自新),
    한연(韓淵), 해풍군(海豊君) 기(耆), 순의군(順義君) 경온(景溫),
    순녕군(順寧君) 경검(景儉), 신잡(申磼), 안황(安滉),
    구성(具宬)

  • 3등

    정탁(鄭琢), 이헌국(李憲國), 유희림(柳希霖),
    이유중(李有中), 임발영(任發英), 기효복(奇孝福),
    최응숙(崔應淑), 최빈(崔賓), 여정방(呂定邦),
    이응순(李應順), 수곤(壽崑), 송강(宋康),
    고희(高曦), 강인(姜絪), 김기문(金起文),
    최언순(崔彦恂), 민희건(閔希騫), 허준(許浚),
    이연록(李延祿), 김응수(金應壽), 오치운(吳致雲),
    김봉(金鳳), 김양보(金良輔), 안언봉(安彦鳳),
    박충경(朴忠敬), 임우(林祐), 김응창(金應昌),
    정한기(鄭漢璣), 박춘성(朴春成), 김예정(金禮禎),
    김수원(金秀源), 신응서(申應瑞), 신대용(辛大容),
    김새신(金璽信), 조귀수(趙龜壽), 이공기(李公沂),
    양자검(梁子儉), 백응범(白應範), 최윤영(崔潤榮),
    김준영(金俊榮), 정대길(鄭大吉), 김계한(金繼韓),
    박몽주(朴夢周), 이사공(李士恭), 유조생(柳肇生),
    양순민(楊舜民), 경종지(慶宗智), 최세준(崔世俊),
    홍택(洪澤), 이춘국(李春國), 전용(全龍),
    오연(吳連), 이희령(李希齡)

【원문】

忠勤貞亮節協策 扈聖功臣 輔國 崇祿大夫 完陽府院君 李忠元書

王若曰板蕩識誠臣 旣著負之績 茅土12)加名數 爰擧酬勞之章 莫與爭功 其敢曰報 惟卿靑氈舊業 玉津餘波 端重剛方 早推公輔之器 聰明子諒 咸稱愷悌之人 事親則誠孝出天 莅職13)氷蘗14)律身 字畫入神 手蹟多留於寶牒 文章驚世 聲名獨擅於龍頭 生風臺閣之歷敡 惟允絲綸之出納 頃値昊天之不吊 以致島夷之肆凶 事有不忍言 累卵之時勢 岌岌計出 無可奈去邠之行色忽忽 多是保妻子而全軀 從我者 孰無能出死力而扈駕 棄予如遺 非卿赤心之無他 ㅍ能白首以徒步跋涉千萬里 有忘身殉國之誠 相從草芥間 効見危授命之節義 雖有君臣之分 情實同父子之親 洒泣激昻 幾陳恢復之策 將命進退 亦多儐相之勞 幸賴皇威以復邦 諒由諸公之宣力 蒙塵失所 旣與患難之相同 定功行封 嘉與安樂之共享 肆策勳扈聖功臣二等 圖形垂後 超二階 爵其父母妻子 亦超二階 無子則甥姪女婿 超一階 嫡長世襲 不失其祿 宥及永世 仍賜伴倘六人·奴婢九口·丘史四名·田八十結·銀子七兩·表裏一段·內廐馬一匹 至可領也 食焉不避15)分內之微功 顚而能扶 予則有言外之至意 物雖簿矣 儀則多焉 於戱 山河誓始終 豈容二三其德 家國同休戚 永保億萬期年 故玆敎示想宜知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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