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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이충원 영정

□ 소재지 : 산북면 백자리 244
□ 지정사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이충원(李忠元, 1537~1605)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원보(元甫)·원포(圓圃)이며, 호는 송암(松庵),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1566년(명종 21)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을 지내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형조참의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해, 그 공으로 형조참판에 올랐다. 그 뒤 첨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을 역임했으며, 1604년(선조 37)에 호성공신 2등으로 완양부원군에 봉해지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이 초상화는 전신좌안칠분면교의상으로 두 손은 공수 자세를 취하고 양 발은 족좌대에 팔자로 올려놓았다. 그림의 좌측 상단에 “완양부원군육십팔세시용(完陽府院君六十八歲時容)”이란 묵서(墨書)가 있어 완양부원군에 봉해진 육십 팔세 때의 얼굴임을 밝혀주고 있다. 즉 이 그림은 호성공신에 책록된 1604년에 그려진 공신도(功臣圖)로서 같은 호성공신에 책록된 이호민(李好閔)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4호)이나 홍진(洪進)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8호)과 얼굴모습만 다를 뿐, 공수 자세·단령의 트임과 안감표현·족좌대 형태·바탕인 오색채전까지 똑같다. 또한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에 책록된 신경유(申景裕) 영정이나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진무공신 장만(張晩)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2호)과도 흉배문양과 얼굴만 다를 뿐 거의 똑같아서 17세기 전반에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공신도 형식을 잘 알려주고 있다.

이충원 상은 이호민 상처럼 서대를 차고, 흉배도 목단과 구름문 바탕에 쌍공작이 날고 있는 목단쌍공작문이며, 공수한 소매 끝은 살짝 트여 백색으로 처리했고, 단령 자락은 트여 녹색 안감을 보이고 있다. 하관이 빠르게 빠져 턱이 뾰죽한 느낌의 안면은 주름살과 안광의 처리가 매우 사실적인데, 정확한 눈의 표현·미간과 주름사이의 섬세한 음영처리·정교한 필치로 묘사한 수염·굵은 점 같은 검버섯 등 섬세한 얼굴모습을 표출하여 전신(傳神)의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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