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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장조이 열녀비

□ 소재지 : 여주시 상동
□ 시 대 : 조선

장조이는 여주 관아의 관리이던 윤응빙(尹應聘)의 처(妻)로,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청병(淸兵)에게 사로잡히게 되자 지금의 영월루 부근인 마암(馬巖)에서 강물로 투신(投身) 자결하였다. 이에 나라에서 그 절개를 표창하고자 이듬해에 정려(旌閭)를 내렸다. 조이[召史]란 성(姓) 다음에 붙여서 과부(寡婦)임을 나타내는 이두(吏讀)이다.

장조이 열녀비(총 높이 134㎝)는 영월루 근린공원에 세워진 역대(歷代) 수령의 선정비들과 함께 서 있다. 원래의 위치는 여주교육청의 길 건너편이었으나 근래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비신(높이 85㎝, 폭 44㎝, 두께 19㎝)의 앞면에 대해(大楷)로 “열녀(烈女) 장조이(張召史) 여(閭)”라 쓰고 그 주변에 “주리(州吏) 윤응빙(尹應聘) 처(妻) 숭정(崇禎) 병자(丙子) 피로(被虜) 마구투강사(馬丘投江死) 정축(丁丑, 1637, 인조 15) 삼월(三月) 명정(命旌)”이라 각자(刻字)하였다. 비신의 나머지 삼면(三面)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으며, 방부운수(方趺雲首)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건립 연대는 정려(旌閭)되던 해인 1637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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