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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수익 효자비

□ 소재지 : 능서면 왕대리 200
□ 시 대 : 현대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15호

영릉(英陵)의 수호군(守護軍)이던 길수익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7대손으로 왕기촌(王基村, 지금의 왕터)에 살았으며, 평소 효행이 뛰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대동놀이차 여강에 노닐러 갔다가 그만 물에 빠져 위험하게 되자, 이를 구하려 뛰어 들어 갔다가 함께 익사(溺死)하였다. 이에 지방 유림(儒林)이 상소를 올려 1670년(현종 11) 나라에서 정려문을 하사하였고, 1966년 후손들이 효자비도 중건하였다.

왕대리 왕터마을의 소로변에 효자 정려각(旌閭閣)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 효자비가 안치되어 있다.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모두 1칸 규모의 목조 건물이며 단청을 하였다. 정면의 처마 밑에 “야은선생(冶隱先生) 칠대손(七代孫) 효자(孝子)”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길수익의 효자정려각임을 알 수 있다.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효자비는 비신의 앞면에 큰 글씨로 “길야은선생(吉冶隱先生) 칠대손(七代孫) 효자(孝子) 수익지비(壽翼之碑)”라 쓴 후 뒷면에 “길효자(吉孝子) 정각(旌閣) 중건기(重建記)”라는 제목의 비문을 새겨 놓았으나 찬서자(撰書者)는 기록하지 않았다. 방부(方趺)는 시멘트로 만들었으며 건립 연대는 “단기(檀紀) 사이구구년(四二九九年) 병오(丙午, 1966) 삼월(三月) 십일(十日) 중건(重建) 입(立)”이다. 이외에도 정려각 내부에는 “효자(孝子) 학생(學生) 길수익지려(吉壽翼之閭)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이십육년(二十六年) 경술(庚戌, 1670, 현종 11) 시월(十月) 명정려(命旌閭)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사무자(四戊子, 1828, 순조 28) 월(月) 초육일(初六日) 중건(重建)”이라 새겨진 정려문판(旌閭門板)과 1932년 여주 출신의 대유학자 직당(直堂) 신현국(申鉉國, 1869~1949)이 지은 “길효자(吉孝子) 정려(旌閭) 중건기(重建記)”가 게시되어 있다. 그리고 정려각 앞의 우측에는 “길효자정려각중건기”라는 비석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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