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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김홍복 영세불망비

□ 소재지 : 능서면 내양리
□ 시 대 : 조선

조선시대 여주의 주요 교통수단은 수로(水路)였다. 육로를 이용할 경우 도성(都城)까지 밤낮 이틀의 노정(路程)이 걸리나 수로를 이용할 경우 도성까지 한나절 정도가 걸렸으며 충청도 충주(忠州)까지의 거리도 하룻길일 만큼 수로는 대단히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다. 중요 나루터로는 여주나루(州內津), 양화나루(楊花津), 이포나루(梨浦津), 부라우나루(丹岩津), 이호나루(梨浦津) 등이 있었으며 역원(驛院)으로는 신진(新津)과 안평(安平)이 있었다.

김홍복 영세불망비(총 높이 138.5㎝)는 내양리의 양화나루 옛터에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신(높이 113.5㎝, 폭 43.5㎝, 두께 19㎝)의 앞면 중앙에 큰 글씨로 “목사(牧使) 김공홍복(金公弘福)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 쓴 후 그 좌우에 작은 글씨로 송시(訟詩)를 기록하였으나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음기나 건립 연대를 남기지 않아 정확한 조성시기는 미상이다. 김홍복은 조선후기에 여주목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행적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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