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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김병기 구휼비

□ 소재지 : 여주시 상동
□ 시 대 : 조선

1856년(철종 7) 4월 여주읍에 대화재가 나서 가옥 1,000여 호가 불에 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왕이 사자(使者)를 현지에 보내어 위로하고 구제하여 주었으며, 복구에 힘쓰도록 왕실 내탕금(內帑金)의 은자(銀子)와 단목(丹木)을 하사하였다. 또 당시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이던 여주 출신의 김병기(1818~1875)가 사재(私財)로 양곡 1,000석을 내어 휼민(恤民)을 구제토록 하였다. 이에 김병기의 공적을 기리고자 구휼비(총 높이 168㎝)를 세운 것이다.

공적비는 영월루 근린공원 안에 세워진 역대 수령의 선정비들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원수형(元首形)의 백대리석 비신(높이 158㎝, 폭 67㎝, 두께 18㎝) 앞면에 비문을 각자(刻字)하였으나, 비제(碑題)와 찬서자(撰書者)는 기록하지 않았다. 비문의 말미에 적힌 건립연대는 “함풍(咸豊) 십년(十年, 1860, 철종 11) 시월(十月) 일(日)”이며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원 위치는 여주읍 창리이다.

김병기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성존(聖存) 호는 사영(思穎)이며, 충익공(忠翼公) 김좌근(金左根, 1797~1869)의 아들이다. 집안의 선대(先代) 세장지(世葬地)가 대신면 초현리에 자리 잡고 있어, 그는 일찍부터 여주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관직은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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