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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리 조선백자요지

도전리 1호요지는 북내면 삼거리에서 328번 지방도를 따라 원주방향으로 진행하면 도전3리 중평동 마을 뒤쪽에 위치한다. 가마는 마을 뒤에 형성된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좌·우로는 능선이 뻗어내려와 계곡부에 위치한 듯한 양상을 띠고 있다. 유물의 분포지역은 대략 40×30m 정도이다. 가마의 방향은 남서에 북동방향으로 생각된다.

채집유물은 발, 접시, 잔, 호 등 다양한 기종의 백자가 수습되었다. 채집된 유물 중 발이 주류이며, 저경보다 넓은 원각이 확인된다. 굽은 대부분 오목굽이며 접지면에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운영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도전3리 중평동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좌회전해서 마을로 진입하여 소로를 따라 약 400m정도 올라가면 2기의 민묘가 있다. 민묘 좌측의 소로길과 풀숲에 유물이 분포하는데 이곳이 도전리 2호백자요지이다. 유적은 파괴가 심하지 않은 상태이며 능선 아래에서 낙엽층에는 백자편과 소토가 수습되어 퇴적층으로 추정된다. 유물이 분포하는 범위는 20×10m 정도이며, 가마의 방향은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여겨진다. 유물은 발, 접시, 잔, 호 등이며 발과 접시가 주류이다. 채집된 유물은 대부분 내저원각이 있고 구연부가 살짝 외반되었다. 굽은 오목굽이며 접지면에 흙물과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운영시기는 17~18세기로 편년된다.

도전리 2호요지에서 남서쪽의 돌무더기와 수풀이 우거져 있는 곳에 도전리 3호요지가 위치한다. 가마터 서쪽에는 개울이 흘렀던 흔적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수풀이 우거져 있다. 유물은 수풀이 우거져 수습이 어렵다. 유물의 산포 범위는 대략 30×15m 정도이며, 가마의 방향은 능선을 따라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추정된다.

채집된 유물은 모두 백자류로 발, 접시, 호, 도지미 등이다. 유물은 대부분 내저원각이 있고 오목굽에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하였다. 이러한 채집유물의 특징으로 볼 때 가마의 운영시기는 17~18세기 정도이다.

도전리 3호요지의 동쪽에 4호요지가 위치한다. 가마터의 북쪽에는 경주 이공봉우·남평 문씨 창복의 묘가 있다. 무덤 뒤의 밭 주변에서 백자편이 50×40m로 산재해 있다. 가마의 방향은 능선을 따라 북동에서 남서방향이었을 것으로 관찰된다.

유물은 발, 접시, 잔, 병, 호 등이며 모두 백자편이다. 접지면에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구웠으며 대체로 접지면에서 굽안바닥으로 오목하게 처리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가마이며 시기는 17~18세기로 생각된다. 5호요지는 원심동마을에 위치한 옹기요지로 다음 절에서 기술하도록 하겠다.

북내면 소재지에서 328번 지방도를 따라 원주 방향으로 진행하면 천주교 피정의 집에 이르는데, 이곳 진입로의 좌측 밭 일대에서 6호 가마터의 흔적이 확인된다. 유적의 범위는 10×10m 정도이며 밭 경작지로 활용되어 파괴가 심한 편이다. 유물은 백자류로 발, 접시, 소토 등이다. 발은 대부분 접지면에서 굽 안바닥으로 오목하게 들어갔다. 유색은 담청백색이 주류이며 전면시유되었다. 이 외에 접시는 오목굽으로 접지면에 흙물과 굵은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이러한 유물의 특징으로 볼 때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가마운영은 17~18세기로 편년된다.

도전리 7호요지는 피정의 집을 지나 도전교를 건너면 우측에 도전리 식당이 있는데, 이 식당 뒤편의 넓은 밭 일대에 유적이 위치한다. 밭 일대에 자기편과 요도구가 분포하고 있다. 유물의 분포범위는 10×10m 정도이며 가마의 방향은 북서에서 남동으로 생각된다.

채집유물은 발, 접시, 원형고리받침, 도지미 등이 수습되었다. 대체로 접지면에서 굽안바닥으로 오목하게 처리되었고 접지면에는 흙물과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운영시기는 17~18세기 정도이다.

도전리 7호요지의 북쪽에 위치한 8호요지는 주변에 넓게 개간된 밭 일대에서 백자편과 소토편이 수습되었다. 밭 경작으로 가마는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며, 유물 분포범위는 20×20m정도이다. 유물은 주로 발, 포개구이편이 수습되었으며 주로 발편이다. 발은 회색, 담록색 등을 띠며 굽을 제외한 전면에 유약을 시유하였다. 굽은 죽절굽이며 접지면에 비짐을 받쳐 포개구이하였다. 시기는 16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도전리 9호요지는 8호요지 서쪽에 위치한 계곡과 밭 일대에서 조사되었다. 유물의 분포범위는 20×30m 정도로 넓은 편이며 가마의 방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추정된다.

채집유물은 모두 백자이며 발, 접시, 병, 합, 제기, 뚜껑, 호, 도지미, 소토 등으로 다양한 기종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특히 기종 중 제기가 다른 가마와 달리 다양하게 수습되었다. 이 외에 발은 대부분 내저원각이 없으며 담청백색을 띤다. 내면바닥에는 포개구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예번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17~18세기로 추정된다.

10호요지는 도전교에서 남쪽으로 50m 정도 내려간 서낭댕이골 밭 일대에 위치한다. 밭 개간으로 인해 가마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고 유물은 밭 일대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발, 접시, 잔, 호, 도지미, 포개구이 등이 채집된다. 대부분 회백색, 담청색 등을 띠며, 오목굽에 흙물과 굵은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운영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10호요지에서 남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11호 요지가 남아 있는데, 백자편과 요도구가 산견되고 있다. 유물의 분포범위는 20×20m 정도이며 퇴적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마방향은 밭경작으로 인해 파괴가 심하여 추정하기 어렵다. 발, 접시, 봇극 등이 수습되었다. 발은 주로 밝은 회백색을 띠며 굽을 제외한 전면에 되었다. 굽은 죽절굽에 접지면에 태토비짐을 받쳐 포개 구웠다. 접시는 도립삼각굽으로 가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운영시기는 16세기로 추정된다.

12호요지는 11호요지에서 계곡을 사이로 남쪽에 넓은 밭이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백자편과 소토편이 수습되었다. 유물의 분포범위는 20×20m 정도이다. 수습유물 중 발과 접시는 다양한 기형이 확인된다. 특히 접시는 대부분 담청색을 띠며 전면시유하였다. 굽은 오목굽으로 접지면에 흙물과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하였다. 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도전1리 탑전교에 이르러 왼편으로 진입하면 야산의 무밭일대에서 15호백자요지가 확인되었다. 유물이 확인되는 지역은 길이 40×30m 가량으로 넓게 분포한다. 가마는 구릉사면을 중심으로 북동에서 남서방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발, 접시, 잔, 호 등으로 다양한 기종이 수습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오목굽이며 접지면에 흙물과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시기는 17~18세기로 여겨진다.

이 탑전동 마을에서 북측(좌측)으로 50m 가량 가면 야산사면에 넓게 개간된 밭 일대에 16호요지가 위치한다. 밭 개간으로 가마는 훼손된 것으로 보여지고 밭의 곳곳에 백자편이 산포되어 있다. 자기편이 산포된 범위는 40×40m 가량이며, 가마는 능선을 따라 남서 방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채집유물은 발, 접시 등이며 내면에 원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함께 동반 수습되었다. 굽은 접지면에서 굽안바닥으로 오목하게 처리하였다. 번조방법은 접지면에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하였다. 유적의 성격은 백자요지이며 운영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16호요지에서 남쪽으로 약 100m 정도 내려오면 넓게 개간된 밭 일대에 도전리 17호요지가 자리하고 있다.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나지막한 능선 위에 위치하는 밭에서 유물이 수습되고 주변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능선은 약 20도 가량의 경사가 졌으며 우측으로는 작은 개천이 흐른다. 가마는 밭 개간과 민묘의 이장으로 인해 파괴된 것으로 확인된다. 유물 산포범위는 20×20m정도이며 가마는 능선을 따라 북동에서 남서방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 접시, 잔, 도지미 등이 수습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오목굽이며 접지면에 흙물과 가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운영시기는 17~18세기로 편년된다.

17호요지에서 남쪽으로 약 150m 정도 내려간 야산 사면에 위치한 밭 일대에서 18호요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밭 일대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유물이 산포되어 있는 범위는 40×40m 가량되며, 가마 방향은 북동방향으로 생각된다.

채집유물은 발, 잔, 포개구이 등으로 내면에 원각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굽은 오목굽이며 접지면에 흙물과 가는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하였는데 17~18세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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