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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내면

북내면의 중암리, 운촌리, 장암리, 상교리, 석우리, 외룡리, 오학리· 천송리(현재 여주시 오학동·천송동) 등에는 여주에서 가장 많은 수인 46기가 분포하고 있다. 이들 요지는 고려백자요지 3기, 고려청자요지 12기, 조선백자요지 22기, 근대백자요지 3기, 도기요지 5기, 기와요지 1기이다.

중암리 도요지는 17기로 녹수골, 깊은 안재이골, 큰골 등에 위치하고 고려백자요지 3기, 고려청자요지 7기, 조선백자요지 4기, 도기요지 3기이다.

먼저 여주지역 도자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중암리 고려백자요지1)에서는 해무리굽 완, 발, 화형접시, 잔, 잔탁, 호, 대반 등으로 다종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층위에 따라 태토의 질과 유약의 시유상태, 굽접지면 폭 등을 달리하며 나타난다. 즉 아래층일수록 기벽이 얇고 태토와 유약이 정선되고 담갈색과 담청색 유조로 광택이 강하게 나는 것이 많다. 반면 위층으로 갈수록 태토가 거칠고 유층이 일정하지 않고 대형기종들이 나타난다. 기형은 굽에서 부드럽게 몸체로 이어져 사선을 그리며 구연과 이어진다. 번조방법은 갑발에 넣어 굽는 갑번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였으나 극소수는 원통형의 도지미 위에 예번하기도 하였다. 또한 갑발 내에서 포개구운 경우도 일부 관찰된다.

녹수골에는 3기의 고려청자요지가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발, 접시, 호, 도지미 등이 수습되었는데 발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암록색을 띠며 굽에서 몸체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내면에는 내저원각이 있고 굽 접지면에 가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접시는 암록색을 띠고 몸체가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저부로 이어지는 형태이다. 굽은 내경하였고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장식 문양은 크게 두 종류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내면은 바닥에 구획선을 둔 후 상단에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를 정성스럽게 백상감(白象嵌)하였다. 외면은 저부에 2조의 구획선을 두고 그 상단 원권 내에 백상감된 국화문이 포치되었다. 두 번째는 내면에 0.1cm의 얇은 2조 구획선이 있고 그 위로 흑상감이 된 연주문대가 촘촘하게 시문되었다. 이러한 유물의 특징을 통해 13~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깊은 안재이골에는 7기의 도요지가 파악되었는데, 그 중 고려백자와 청자요지가 각 1기씩이고 조선백자요지 3기, 도기요지가 2기이다. 고려청자의 상감문양을 살펴보면, 내면 바닥에 2조 가는 선이 돌아가고 그 위로 여의두문이 백상감되었다. 시기는 13세기에서 14세기로 추정된다. 고려백자요지는 앞에서 살펴본 중암리 고려백자요지와 인접지역으로 완과 갑발 등이 수습되었다. 조선백자요지는 모두 17~18세기로 추정되는데, 발, 접시 등이 수습되었다. 대부분 담회청색을 띠며 오목굽에 흙물을 묻히고 굵은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큰골에서는 고려백자요지 1기, 고려청자요지 2기, 조선백자요지와 도기요지가 각 1기씩이 확인되었다. 큰골요지는 대부분 경작으로 유구가 유실되어 소량의 자기편과 소토, 요도구 등을 통해 가마터로 확인되었다. 고려백자요지는 밭으로 경작되어 퇴적구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으며 완, 갑발편이 수습되었다. 청자요지에서는 발, 소토 등이 수습되었고 13~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도기요지에서는 내·외면 모두 회청색을 띠며 대부분 경질의 동체부편이 채집되었다.

운촌리 도요지는 양지마을, 사기덤불 등에서 총 4기가 분포하는데, 고려청자요지 1기와 조선백자요지 3기이다. 양지마을과 사기덤불에는 17~18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조선백자요지 3기가 남아 있다. 발, 접시, 잔, 도지미 등이 산포되어 있다. 발은 대부분 회청색을 띠고 내면에 내저원각이 있다. 기형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굽으로 이어진다. 굽은 오목굽으로 흙물을 묻히고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고려청자요지는 발과 소토편이 소량 수습되었고, 가마 유구는 유실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북내면에서 가장 많은 수가 분포하는 상교리 도요지는 점골, 즘말, 사기전골에 15기가 자리한다. 이들 요지는 고려청자와 도기가 1기씩이고 나머지는 조선백자이다.

점골은 조선백자요지 5기가 남아 있는데, 발, 접시, 잔, 도지미 등이 수습되었다. 이 중 발은 담회청색을 띠고 내면에 내저원각이 있다. 굽형태는 굽바닥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오목굽이고 바닥에 흙물을 묻힌 후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서 구웠다. 요도구는 갓모와 경사진 형태의 원반형 도지미가 관찰된다. 제작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즘말에는 조선백자요지 4기와 도기요지 1기가 남아 있다. 조선백자요지에서는 발, 접시, 잔, 원통형 도지미 등이 출토되었다. 기종은 발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체로 담록백색과 연갈색을 띤다. 기형은 굽에서 부드럽게 몸체로 이어져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구연부에서 외반되는 형태이다. 굽은 대부분 죽절굽이고 태토비짐을 사용하였으나 기존의 조선백자에서 굽 안쪽에 붙여 받치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 굽다리 바깥쪽에 붙였다. 이러한 특징은 충남 보령군 미산면 용수리와 평라리의 분청사기요지2)에서 굽다리 바깥쪽, 즉 그릇의 외저부에 태토비짐을 붙이는 예가 발견된 바 있다. 이것은 일본 구주지방에서 흔히 발견되는 굽받침3)으로 조선 전기의 기술이 임진왜란기에 일본 구주로 이전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실증자료라고 할 수 있다.4) 도기요지에서는 대부분 동체부편이 채집되었다. 경질도기편으로 내·외면이 회청색을 띤다.

사기전골에는 4기의 백자요지가 위치한다. 유물은 발, 접시, 잔, 원반형 도지미가 수습되었다. 발이 주류를 이루며 기형과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유색은 담청회백색이 주류를 이루며 유약을 전면시유하였다. 내저원각이 있으며 외면에는 장식이 없다. 기형은 몸체에서 완만한 호를 그리다가 구연부에서 살짝 외반되었다. 굽은 오목굽이 주류이며 흙물을 묻히고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어 번조하였다. 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장암리 도요지에는 고려청자요지 3기와 조선백자요지 1기가 남아 있다. 고려청자요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발, 접시, 호, 원반형과 원통형 도지미 등이다. 발은 암록색을 띠며 굽에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몸체로 이어지다가 구연부에서 살짝 내경하였다. 굽은 내경하였고 접지면에 가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문양은 화문, 여의두문 등이 시문되었다. 화문은 상하단에 2조의 선을 두고 백상감하여 배치하였다. 여의두문은 내면 안바닥에 2조의 구획선을 두고 상단에 구연부를 향해 여의두문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백상감되었다. 요도구는 원통형 도지미와 원반형 도지미가 함께 관찰된다.5)

석우리 도요지는 조선백자와 도기가 각 1기씩 분포하고 있다. 석우2리에 위치한 조선백자요지에서는 발, 접시, 잔, 원반형 도지미가 수습되었다. 담청회백색을 띠며 유약을 전면시유하였다. 내면에는 내저원각이 있고 외면에는 장식문양이 없다. 기형은 몸체에서 완만한 호를 그리다가 구연부에서 외반되었다. 굽은 오목굽이고 흙물을 묻힌 후 굵은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이런 특징으로 보아 17~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외에 오학리와 외룡리에 근대백자요지, 천송리에 기와요지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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