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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강월헌

□ 소재지 :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 내
□ 시 대 : 고려(현대 중수)

천송동 신륵사 경내 강가에 위치한다. 신륵사 동쪽의 높은 언덕에 다층전탑이 서있고(동대) 강 쪽 약간 아래에 3층석탑과 강월헌이 서 있다. 여강의 풍광이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는 절경으로 아래쪽 강가의 암반 위에 주춧돌을 대신하여 세웠으며, 기둥의 크기는 암반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런 크기로 서 있다. 원래 정자는 3층석탑과 거의 맞붙어 있었으나 1972년 홍수로 옛 건물은 떠내려가고 지금의 건물은 1974년에 철근과 콘크리트로 2층의 6각형 정자로 새로 지은 것이다. 기문은 없다.

원래 강월헌은 보제존자 나옹(1320~1376)의 처소 이름이자 당호였다. 나옹은 양주 회암사에서 밀양 형원사로 가는 도중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나옹이 신륵사에서 입적하고 난 뒤 제자들이 유지를 받들기 위해 사리탑과 영당을 세운 것이다.

보제존자 나옹의 영당이 맨 처음에는 강월헌이었던 것 같다. 이후 지공·나옹·무학을 모시는 조사당(祖師堂)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나옹은 양주 회암사에서 밀양 형원사로 가는 도중 신륵사에서 입적하였고, 실제 신륵사에서 머문 기간이 며칠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강월헌은 양주 회암사의 나옹의 생전 처소였던 강월헌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가에 있는 정자는 최근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신륵사를 나들면서 강월헌을 언급한 시는 찾아 볼 수 없고 대부분 동대(東臺)를 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승려였던 함허 기화(涵虛 己和, 1376~1433)와 서산대사의 언급이 보일 뿐이다.

따라서 강월헌은 전각의 형태로 있다가 이름이 없어진 뒤 강가에 만들어진 정자의 이름으로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월헌 주변 남한강가의 암벽에 커다란 해서체 글씨로 “동대(東臺)”라 세로로 각자되어 있다. 1874년(고종 11) 여주목사를 지낸 이돈하(李敦夏)가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대를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연못에는 소나무와 노송나무가 창연하여 경치가 극치를 이루어 상류의 제일로 꼽는다. 나옹선사가 바위 위에서 입적하여 그 제자들이 작은 부도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동대는 남한강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고려시대 조성된 벽돌탑이 있어 더욱 유명하며 숱한 시인 묵객들이 동대에 올라 풍광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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