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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루

□ 소재지 : 여주시 상동 136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여주시 상동 영월루 공원의 산정부에 위치한 누정으로 남한강이 굽이치는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게 조망된다는 점에서 여주 관내의 누정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조선시대 여주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1925년 여주 관아가 근대식 건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당시 군수 신현태(申鉉泰)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보존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명칭도 ‘기좌제일루(畿左第一樓)’에서 영월루로 변경했다고 한다. 1870년(고종 7) 여주부사 이인응(李寅應)이 쓴 「아사문루기(衙舍門樓記)」에 따르면 본래는 ‘기좌제일루’의 5자로 편액되어 있었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전형적인 중층 누각형태의 형태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현판은 앞과 뒤에 모두 걸었는데, 유려한 예서체로 이 고장 출신의 한말 서예가인 동창(東滄) 원충희(元忠憙)의 글씨이다. 하층은 새로 만든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다듬은 장초석을 놓고 위로 짧은 원형기둥을 세워 마루를 놓았다. 상층은 두리기둥을 세워 이익공의 공포를 결구하였으며 창방을 굵은 부재로 보강하였다. 가구 구조는 5량을 짰는데 종보와 대들보 사이는 간격이 매우 좁고, 종도리는 파련대공으로 받았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나 양끝 외기부분만 우물천장으로 꾸민 눈썹천장을 설치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에 한식기와를 올려 팔작지붕을 이루었으며, 용마루 좌우는 막새를 세웠으나 상부에도 취두를 설치하였다. 상층 누마루는 사방으로 계자난간을 둘렀다. 익공의 형태나 가구수법으로 미루어 18세기말의 건물로 추정된다. 왼쪽 칸에 하층에서 상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었다.

현재 영월루가 세워진 자리는 서하군(西河君) 임원준(任元濬, 1423~1500)이 만든 사우당(四友堂)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누마루에 오르면 천년고찰 신륵사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더없이 아름답고, 멀리 원주 치악산과 양평 용문산을 바라보는 원경도 뛰어나 예부터 탐승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명승지로 알려져 오고 있다. 현재도 영월루에 오르면 앞으로 흐르는 한강과 여주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영월루는 “마암(馬巖)”이란 글씨가 새겨진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다. 대체로 18세기말의 건물로 추정되며, 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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