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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사

□ 소재지 : 대신면 보통리 188
□ 시 대 : 조선(현대 중수)

모충사는 조선 중종대의 문신인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 1466~1543)과 그 5세손 문충공(文忠公) 조한영(曺漢英, 1608~1670)의 불지전사판(不之典祠版)을 모신 사당이다. 충정공의 증손자 조경인(曺景仁, 1555~1615)이 임진왜란 때 낙향해서 세우고 대대로 계승해 오다가 1935년 후손 조국현(曺國鉉)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통리마을의 뒤쪽 산자락에 모충사가 건립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목조건물로 단청하였으며 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사당의 정면 처마에 예서체 글씨로 “모충사(慕忠祠)”라고 횡서(橫書)한 현판을 걸어 두었으며 사당 주위로 벽돌담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실내에는 충정공과 문충공의 사판과 더불어 하은군(夏恩君) 조헌주(曺憲周, 1645~1693)의 처인 증정부인(贈貞夫人) 연안 이씨(延安 李氏, 1644~1692)의 열녀정려문(烈女旌閭門) 현판을 함께 봉안하였다.

연안 이씨는 문숙공(文肅公) 이일상(李一相, 1612~1666)의 딸이며 효성과 부덕이 있었다. 남편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차도가 없게 되자 “남편이 병든 지 3년인데 내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하니 그 죄가 죽어 마땅하고 또 내 죽지 않고서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을 어찌보리오?”라며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남편의 임종 전에 자진하였다고 한다. 이에 나라에서 1741년(영조 17) 열녀문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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