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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서원

□ 소재지 : 금사면 이포리 산26-1
□ 시 대 : 조선(현대 중수)
□ 지정사항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5호

기천서원은 원래 1580년(선조 13)에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마암(馬巖)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여주목사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은 유림들과 논의하여 주내(州內) 마생동(馬生洞)에 터를 잡고, 사우와 강당을 지었는데, 당시 이름은 마암서원(馬巖書院)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8년(선조 41) 지금의 위치로 이전·복원 하였고 1611년(광해군 3)에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홍인우(洪仁祐, 1515~1554)도 함께 배향하였다. 그리고 1625년(인조 3)에 유생 성여격(成汝格) 등이 상소하여 기천서원(沂川書院)이라고 사액(賜額)을 받았다. 그 후 이원익(李元翼, 1547~1634), 정엽(鄭曄, 1563~1625), 이식(李植, 1584~1647), 홍명구(洪命耉, 1596~1637), 홍명하(洪命夏, 1607~1667)를 추가 배향해 총 8인의 성현을 모셨으며,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이후 1937년 김영진(金泳鎭) 등 여주지역 유생 백여 명이 기금을 모아 사우만을 중건하고 모현사(慕賢祠)라 하였다. 1979년 서예가 김충현(金忠顯)이 기금을 부담하여 퇴락한 건물을 새로 복원하고 “기천서원(沂川書院)”이란 현판을 다시 걸었다. 이어 1987년과 1994년의 복원을 통해서 나머지 부속 건물들도 중수되어 서원으로서의 옛 모습을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천서원은 이포리 서원말 뒤쪽의 야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의 앞쪽에 동·서재가 위치하고 위쪽에 사당이 자리 잡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갖추었는데 강당이 없는 특이한 배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서원 동쪽 언덕에는 모현사가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집이고, 내부에 여덟 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매년 2월 중정(中丁, 두 번째 정일)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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