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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향교

□ 소재지 : 여주시 교동 216-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호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원래 여주향교는 여주읍 상리 마암(馬巖) 근처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타버린 후 1685년(숙종 11)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고개에 다시 건립하였다. 하지만 그 후부터 부락 주민이 자주 괴질에 희생되고 또 지세도 상서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여주향교는 교리 향교말 뒷산의 나지막한 구릉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문격인 외삼문(外三門)을 지나면 곧장 명륜당(明倫堂)이 보이고, 그 뒤로 난 계단을 올라 내삼문(內三門)에 들어서면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이 나타난다. 앞쪽에는 유생들이 강학하는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성현을 모시는 전각을 세워 전통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향교건축법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명륜당은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처마 밑에는 큰 전서(篆書)로 “明倫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내부 앞쪽의 기둥열로 미루어 전면에 개방된 퇴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대성전의 옆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익공계의 형태와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대성전과 함께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여러 차례의 개보수를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76년을 시작으로 1980·1986년에 걸친 총 3차례의 대대적인 정비 공사를 실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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