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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상구리 사지Ⅰ

□ 소재지 : 대신면 상구리 용화사

이 사지 주변의 마을은 ‘미륵이마을’이라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미륵불입상만이 옛사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을 뿐 주변에서 기와편이나 자기편은 발견되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많은 수의 사찰들이 존재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용화사(龍華寺)만이 있을 뿐이다. 본래 민가로 전각을 대신하였고 승려도 거주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벽공(碧空)·정심(靜心) 두 스님이 거주하고 있다. 본래 산신당(山神堂) 안에 모셨던 석불입상도 원위치로 추정되는 법당 측면의 마당으로 옮겨져 있다.

불상은 방형의 대좌 위에 직립(直立)하여 있다. 화강석 1석으로 조성하였는데 목이 부러진 것을 시멘트로 보수하였고 두 눈도 새롭게 고쳐 원형을 잃었다. 불상의 뒷면은 전체적으로 평판적(平板的)이다. 대좌는 방형으로 복엽(複葉) 8판(瓣)의 복련(覆蓮)이 새겨져 있고, 상면에는 낮고 높직한 괴임단이 1단 조성되어 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나발(螺髮) 표현이 없는 보관과 같은 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긴 편으로 두 눈은 약간 고쳤고 귀는 많이 마모되었다. 목에는 삼도가 있다. 통견(通肩)의 불의(佛衣)는 두껍게 조각되어 있는데, 가슴에서 몇 겹의 평행선을 이루고 있고 양다리 사이에서도 평행의 원호(圓弧)를 여러 겹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까지 내려 손등을 보이고 있다. 두 발은 옷의 아래로 가지런하게 평행하여 표현하고 있다.

길쭉한 얼굴에 원통형의 보관, 신체에 비해 하체가 짧게 표현되어 형식적인 느낌이 많이 나타나는 점으로 고려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통통한 얼굴에 강직하게 보이는 두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의 세련된 표현 등은 당시 여주지역에서의 불상 제작과 관련하여 양식의 변천과정을 밝히는 귀중한 자료라 평가한다. 불상의 높이는 235cm(몸통높이 195cm), 머리의 너비는 45cm, 어깨의 너비는 95cm, 무릎의 너비는 74cm이다. 발의 높이는 16cm, 너비는 59cm이다. 한편 대좌는 정방형의 모습으로 가로 140cm, 세로 135cm, 높이 27cm이다. 중앙에 높게 만들어 놓은 괴임단은 높이 3.5cm, 너비 67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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