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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교량에 대해 기술한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해동지도』, 『여주목지도』, 『여주읍지』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사료가 비슷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기록에 따라 증감은 있으나 여주에 설치된 다리들은 대교(大橋), 억억교(億億橋), 청민천교(淸泯川橋), 신은천교(莘隱川橋), 신은교(新恩橋), 용거교(龍巨橋) 등이다. 이 가운데 억억교는 상술한 바와 같다.

대교는 대교천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대교천은 그 근원이 음죽현 흑석동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이포진으로 흘러간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현재의 복하천이 대교천임을 알 수 있다. 여주 지방하천의 지명은 대개 하류지점의 중요한 장소 명에서 따온 경우가 보이는데 양화나루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은 양화천, 신은리로 흐르는 하천을 신은천이라 한 것과 같이 대교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을 대교천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대교는 복하천의 하류에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양화역과 이포진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청민천교는 오늘날의 청미천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점동면 장안리와 현수리를 잇는 다리로 추정된다. 이 인근에 여주 3역의 하나인 안평역이 있었고 목교가 있었다는 인근주민들의 전언이 있는 만큼 이 일대에 도하의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한 다리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신은천교(莘隱川橋)는 양화천 위에 놓인 다리로 추정되는데 양화천이 『해동지도』에는 신은천(莘隱川)으로 표시되어 있다. 『여주목지도』에는 신은천교가 영릉에서 두무현을 넘는 도로상에 그려져 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여흥동·중앙동에서 번도리를 거쳐 신근리(옛 신은리)를 지나 이천시로 넘어가는 42번 국도의 노정과 일치하고 있다. 42번 국도의 개통과 더불어 이 일대의 옛 길과 다리는 자취를 감추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은교는 현재의 개군면 공세리와 양평읍 회현리를 잇는 다리로 『여주목지도』에 삼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장시가 개설된 것으로 묘사되어있다. 37번국도의 개통과 더불어 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용거교는 현재의 용은리 용거부락에서 매류리를 거쳐 오계리, 교리를 거쳐 여주읍치로 들어오게 되는 행행어로(行幸御路)인 이천읍거로(利川邑去路)와 양화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천에서 꽤 멀리 돌아오는 길임에도 이 길을 거쳐 능행한 이유는 영릉의 주산인 북성산과 그 줄기를 피하고자 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42번국도의 개통과 최근 국도확장공사로 이러한 의도는 망각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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