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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천남나루

□ 소재지 : 대신면 천남리 사비마을 681 일대
□ 시 대 : 조선

대신면 천남리 사비마을에서 남한강을 건너 여주읍내를 연결하던 나루로, 사비마을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사비나루라고 불렀다. 1971년까지 약 20명이 탈 수 있는 목선으로 대신면 천남리·가산리·후포리·당산리 주민들이 여주장을 드나들 때 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나룻배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들은 1년에 보리 1말과 벼 1말을 내었다. 현재 준설선이 대규모로 모래를 준설한 탓에 사비나루터 앞이 깊어졌지만, 1971년 나루가 없어질 때까지는 모래톱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강폭이 150m 정도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사비나루 앞의 양섬까지 나룻배로 건넌 다음에는 모래톱을 걸어서 여주장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대신면 주민들이 키운 소 또한 이 나루를 건너서 여주장으로 갔다. 양섬과 육지 사이의 샛강은 물 깊이가 20~30cm에 불과하여, 홍수가 닥칠 경우 피해가 심했는데, 실제로 1972년 홍수 때 나루가 모두 물에 잠긴 후에 다시 복원되지 못했다고 한다.

팔당댐이 완공되기 전 사비나루에는 나루사공의 집, 주막, 어부의 집이 각각 1가구씩 있었다고 한다. 사비나루의 마지막 사공은 박태준씨로 오래 전에 작고하였다. 사비나루는 뗏목과 짐배가 쉬어가는 곳이었다고 한다. 뗏목 등이 올 때는 떼꾼들이 미리 연락을 하는데, 그러면 주막에서는 돼지를 잡는 등 부산하게 음식을 장만했다고 한다.

사비나루와 여주읍 사이에 있는 ‘제비여울’은 물살이 매우 급하여 뗏목이 파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울을 지날 때 사공들은 “멍석 말아라”라고 외치면서 서로 주위를 환기시켰다고 하는데, 여울을 잘 건너지 못하면 멍석을 말듯이 떼가 말려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뗏목이 파선하면 여울 주변에 나무가 수북하게 쌓이는데, 이를 두고 돼지울과 같다는 표현을 쓴다. 이 때문에 뗏목이 지나갈 때 어린애들이 강가에 나와 “돼지울이나 지어라” 하면서 뗏사공들을 놀렸다고 한다.

사비나루의 어부는 ‘매생이’라고 하는 배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매생이는 길이 2~3m, 폭 1m 내외의 작은 배로 두 사람이 타도 위태롭게 보일 정도이며, 사람이 등에 지고 운반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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