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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부라우나루

□ 소재지 : 여주시 단현동 60-7 일대
□ 시 대 : 고려

여주읍 단현리 부라우마을과 남한강 건너편의 강천면 가야리 지역을 연결하던 나루이다. 나루 주변의 바위들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부라우’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나루는 마을에서 약 25m의 나지막한 고개 너머 급경사를 이룬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강가로 돌출한 바위가 거센 물결을 막아주지만 홍수가 나면 나루터 주변 가옥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고갯마루에는 민참판댁 외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인근의 능현리는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는 여흥 민씨의 집성촌이었다. 민참판댁에서 바위 쪽으로 길이 나있고 강가 바위 위에는 육모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주춧돌이 있었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정자 주변 암벽에는 ‘단암(丹嵓)’ 이라고 새긴 각석이 남아 있다.

나룻배는 단현리 부라우마을에서 관리하였는데, 길이는 15m 내외로 약 40명이 승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룻배의 건조 비용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갹출하여 만들었으며, 면이나 군에서 보조금을 지원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송판을 구입하여 마을에 거주하던 목수에게 맡겼다고 한다. 당시 부라우나루에 거주했던 목수는 인근의 우만이나루의 배도 건조하거나 수리하였는데, 1967년 당시 하루에 세끼를 제공받고 일당은 쌀 1말이었다고 한다. 배를 만드는데 거룻배의 경우는 약 1주일이 소요되었으며, 나룻배는 보름 이상 걸렸다고 한다. 1975년경 나루가 없어질 때까지도 부라우의 나룻배는 수시로 수선하는 목선이었다고 한다.

나룻배로 강을 건널 때에는 물살을 고려하여 배를 끌고 강을 거슬러 올라간 다음 노를 저어가야 한다. 그런데 부라우나루 위편에는 바위가 돌출해 있어서 물에서 배를 끌 수 없었고, 따라서 사공이 노를 저어 상류로 오른 후에 건너편으로 노를 저어갔다고 한다. 물살이 급할 때는 ‘배치(옆노)’도 저었는데, 이를 “배다린다”고 한다고 한다. 마을에서 정한 뱃사공에게 1년에 보리 1말과 벼 1말을 거두어 주었는데, 주로 강천면 가야리 주민들이 냈으며 굴암리·간매리·적금리 주민 일부도 포함되었다.

주로 강천면 주민들이 여주장을 이용하기 위해 부라우나루를 건넜고, 단현리 부근 주민들은 남한강 건너 강천면에서 땔나무 채취를 하기 위해 나루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나루터가 급경사를 형성하고 있어서 무거운 물자를 운송할 때에는 조포나루 또는 여주나루를 주로 이용하였지만, 소장수들은 원주장에서 소를 구입하여 부라우나루 또는 우만이나루를 건너 여주장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강천면 주민들이 여주장에서 일소를 구입하여 나루를 건너기도 했다. 부라우나루는 뗏목이나 짐배가 묵어가는 곳이 아니었으며, 단지 가끔 소금배가 정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부라우마을 맞은편 가야리 봉바위마을 앞에 여울이 있어, 그곳 주민들은 갈수기에 짐배가 지날 때 뱃골을 파준 댓가로 돈을 받은 일은 있었다고 한다.

부라우나루는 여주대교가 완공된 이후에도 몇 년간 이용되다가 1975년경 없어졌다. 나루터 주변에는 5가구가 농사와 어로를 겸하면서 살았는데 나루가 폐쇄되면서 모두 떠났다고 하며, 빈터에는 느티나무 서너 그루만 남아 있다. 민참판댁 가옥이 있었다고 하는 고갯마루에는 최근에 신축한 전원주택 3채가 나루를 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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