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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우만리나루

□ 소재지 : 여주시 우만동 우만이마을 233 일대
□ 시 대 : 조선

여주읍 우만리 우만이마을에서 남한강 건너편의 강천면 가야리를 연결했던 나루이다. 나루 소재지 마을의 명칭에 따라 ‘우만이나루’라고도 하였으며, 현재 상류 쪽으로는 바로 인접해서 영동고속도로 남한강교가 통과하고 있다. 나루터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보호수 1기가 있어 여름철이면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데, 나루가 제 기능을 발휘했을 시절에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1972년 홍수로 나루가 없어지기 전까지 우만이나루에는 20명이 탈 수 있는 나룻배와 최대 10명까지 승선할 수 있는 거룻배가 각각 1척씩 있었다고 한다. 배는 우만이마을에서 관리하였으며, 강천면의 적금리·굴암리·가야리 주민들이 여주장을 출입하거나, 또는 여주읍 우만리·멱곡리 주민들이 강천면으로 땔나무를 하러 갈 때 주로 이용하였다. 우만이마을 근처 산은 대부분 사유지이거나 또는 나무가 많지 않아서, 강천면 동쪽 또는 북쪽의 깊은 골짜기까지 가서 나무를 장만했다고 한다.

우만이나루에서는 소를 건네주는 경우도 많았다. 원주장에서 소를 구입한 소장수들이 우만이나루를 경유하여 여주장과 장호원장으로 이동하였는데, 특히 여주장으로 가는 소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적금리 신대촌마을에는 2~3명의 소장수들이 살고 있어서, 주변 농촌의 소를 구입하여 여주장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강천면에 거주하는 중학생들이 여주읍 등지로 통학을 할 때도 종종 이용하였다고 한다.

우만이나루의 마지막 사공은 작고한 송부 성씨였는데, 나룻배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들에게서 1년에 겉보리 1말과 벼 1말을 거두었는데, 벼가마를 지고 다니면서 받았다고 한다. 곡식을 내지 않는 승객은 요금을 내었는데, 1970년경 배삯은 편도에 300원이었다고 한다.

배를 건조하고 수선하는 비용은 모두 사공이 부담하였다. 배의 수명은 약 10년이었으며, 여주장에서 송판을 구입하여 목수에게 맡겼다고 한다. 송부성 사공은 부라우에 거주하던 목수를 불러서 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하루 세 끼를 제공하고, 하루 일당으로 쌀 1말을 주었다고 한다. 거룻배의 경우 1주일 내외, 나룻배는 보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우만이나루는 짐배나 뗏목이 쉬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만이 여울에서 파선하는 뗏목이 많았다고 하며, 지나가는 뗏목을 향하여 “돼지웃간이 지어라” 하며 놀리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만이나루 주변에는 강에서 ‘어부시(魚鳧施)’를 지내는 주민이 많았다고 한다. 음력 정월 보름에 우물 3곳에서 물을 떠다가 밥을 짓고, 바가지에 한 덩어리 떠낸 다음에 날이 새기 전에 강으로 가서 흘려보내는 것으로 용왕신을 먹인다고도 하며, 한 해의 액땜으로 여겼다. 용왕고사는 큰 짐배를 가진 집에서 지냈는데, 우만이에는 짐배가 없어서 용왕고사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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