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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신진역터

□ 소재지 : 여주시 신진동 96-2 일대
□ 시 대 : 고려

조선시대 여주지역에 소재하였던 3개 역의 하나로 현재의 여주시 신진동이 그 유지에 해당한다. ‘신진’이라는 명칭은 ‘새로운 나루’라는 뜻이므로 아마도 조선후기에 이 지역에 자리잡았던 여흥 민씨의 득세와 연관하여 설치된 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신진나루는 부라우나루 또는 단암나루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역은 인근의 나루를 통해 원주방면에서 오는 역마(驛馬)나 충주에서 안평역을 거쳐 여주로 들어오는 역마가 거쳐 가는 역으로 여주읍치의 초입에 있는 중요한 역이다. 조선후기 『여주읍지(驪州邑誌)』를 보면 신진역은 “읍치의 동쪽 15리에 있어 역리는 22명이고, 노 12구, 비 2구가 있다. 상등마는 1필이고 중등마는 4필이다”라고 되어 있어 이 역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는 인근의 안평역이나 북쪽의 양화역과 비교해볼 때 규모면에서 앞서는 것이고 읍치와 가깝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신진역은 여주에서 동으로 뻗은 충주거로(忠州去路)의 노상에 있는데 충주거로는 주치-신진역-우만리-흔암리-점양리-도리-안평역-단수리를 거치며 충주 경계에 이르기까지 40리에 걸쳐 뻗어 있었다.

또한 신진역의 설치와 함께 주목되는 것이 신진(新津 : 새나루)의 존재이다. 신진은 지금 이용되고 있지 않으나 신진역이 있는 신진리와 연양리 일대, 이호리 사이를 잇던 나루이다. 이 나루를 통해 원주와 지평(현 양평군 지제면) 방면의 교통이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나루와 역의 선후관계는 밝힐 수 없으나 『高麗史(고려사)』에 평구도(平丘道)의 관할 30역 가운데 하나로 신진역이라는 이름이 확인되기 때문에 이 역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이용되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신진역은 경안도(慶安道)의 관할아래 있는 역으로 나오는데 덕풍(德豊), 아천(阿川), 오천(吾川), 유춘(留春), 양화(楊花), 신진(新津), 안평(安平)의 6역이 경안도의 관할이었다. 오늘날의 교통로로는 충주에서 여주, 이천, 광주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교통로의 중간지점에 있는 역으로 그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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