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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원적산성

□ 소재지 : 금사면 주록리 원적산
□ 시 대 : 고려~조선
□ 별 칭 : 원적산토성지

금사면 주록리와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의 경계를 이루는 원적산의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이 산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조선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보이지 않으나, 조선후기의 『여지도서(輿地圖書)』 및 『대동지지(大東地志)』에 관련 사항이 전해온다. 즉 “고성(古城)이 북쪽 20리 원적산 위에 있는데, 공민왕이 축조한 것으로 둘레는 2,400보인데, 지금은 폐하였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대동지지』에서는 그 둘레를 2,403보로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19세기말에 간행된 『이천부읍지』 및 『이천군읍지』등에서도 『여지도서』의 내용이 그대로 전재되고 있다.

문헌기록상의 시기적 특성을 고려할 때 원적산성은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전기에는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축조시기는 고려 이전으로 올려 잡을 수 있는데, 원적산이 여주·이천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임을 고려할 때 대규모의 산성이라는 점에서 고려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여지도서』에서도 “고성”이라는 표현과 함께 ‘지금은 폐지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운영시기도 고려시대로 국한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기록에 따르면 둘레가 2,400보라고 하였는데, 이를 현재의 미터법으로 환산해보면 대략 4.5km~6.7km 정도에 이르는 대규모의 산성에 해당된다. 원적산은 원적봉과 천덕봉이 2개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산성은 천덕봉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덕봉 정상에는 현재 약 150평 정도의 평탄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주변이 약 60도 가 넘는 경사면을 형성하고 있고 일부는 자연암반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를 이용한 성벽의 축조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천덕봉과 원적봉에는 헬기장이 들어서 있어서 원형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이며, 성벽의 존재 유무는 좀 더 전문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원적산성은 주변 지역에서 가장 높고 험준하며 사방이 잘 조망되는 산이다. 따라서 이러한 산에 대규모의 산성을 축조한다는 것은 시작단계부터 결코 쉽사리 고려해 볼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적극적인 방어 개념의 산성이었다기 보다는 외침이나 전란을 맞이하여 피난용의 입조산성으로 축조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시기로는 몽고침략기를 상정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산성에 대한 이해는 고려시대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보다 종합적인 조사를 통해 해명해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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