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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북성산성

□ 소재지 : 능서면 신지리 산 69번지 일원과 여주시 월송동 경계의 북성산
□ 시 대 : 삼국~조선
□ 별 칭 : 신지리성지(新池里城址)

여주시 월송동과 능서면 신지리의 경계를 이루는 북성산(해발 275m)의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의 석축 산성이다. 대부분의 출입로가 능서면 신지리 방면으로 발달한 까닭 때문인지 ‘신지리성지(新池里城址)’로도 알려져 왔다. 이 산성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여흥동·중앙동에서 이천시로 이어지는 간선도로인 4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약 4km 정도 가다 보면 왼쪽으로 능서면 신지리가 나온다. 신지리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북성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은 군부대를 통해 북성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이외에도 북성산성에 오르는 통로로는 신지리 새미실마을에서 북성산 서쪽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다만, 정상부에 위치한 군사시설 때문에, 군부대의 허가를 얻지 않고서는 산성을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성산성에 관한 문헌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래 조선시대의 지리지·읍지 대부분에 보이는데, 이때부터 이미 ‘유고성지(有古城址)’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여말선초의 어느 시점에는 이미 폐성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해당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① 『新增東國輿地勝覽』 驪州牧 山川條 北城山, “在州西七里鎭山有古城址.”
  2. ② 『東國輿地志』, “北城山在州八里 鎭山有古城址.”
  3. ③ 『輿地圖書』, “北城山在州西七里 有古城址 今爲兩主山.”
  4. ④ 『大東地志』, “西北七里稱城北入英陵局內.”

북성산성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科)』를 편찬하는 일환으로 이루어져 일명, ‘신지리성지(新池里城址)’로 알려져1) 왔으나, 이후 부분적인 보완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북성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 여주군에 분포한 문화재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대강의 현황이 파악되었다.

성벽은 북성산의 정상과 북동쪽 아래 해발 250m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전체 길이는 약 1,150m 정도2)이다. 현재 북성산의 정상부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있는 관계로 체계적인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지만, 운영시기는 대체로 통일신라대에 축조되어 고려시대까지 활용된 성곽으로 추정되고 있다.

평면 형태는 기본적으로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에 자연지형을 따라 능선과 만나는 곳을 돌출시킨 부정형의 모습이다. 단면은 남쪽에 정상부가 위치하여 남고북저(南高北低),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태이다. 현재 성벽은 정상부 북서사면에 위치한 헬기장의 아래쪽과 해발 250m의 봉우리의 동측 면에서 길이 10m 가량 잔존한다. 대부분의 성벽은 붕괴되었고 성벽을 따라 면석을 이용하여 군 참호를 조성해놓았다. 참호에서 발견되는 면석들을 볼 때 다소 거칠게 다듬은 편이며, 크기는 길이 20~40cm 정도로 불규칙하다.

북성산 정상부 주위를 돌아가는 남벽 부근은 군부대의 철조망으로 인해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진행하는 성벽은 정상부와 해발 250m 봉우리 사이의 계곡부와 만나면서 가장 낮은 고도를 보이다가 해발 250m의 봉우리를 향해 올라간다. 이 봉우리를 지난 성벽은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데 동벽의 남쪽과 남벽 일부는 군시설물로 조사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성내 시설물로는 치성 4개소, 건물지 3개소, 우물지 1개소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우물지는 성내 북서쪽의 평탄지에 위치하는데 남북길이 3.8m, 동서길이 2.7m의 타원형이다. 대략 큰 것은 50×40cm, 작은 것은 30×25cm의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상면의 대부분은 파괴된 상태이다. 이 부근은 성내에서 가장 저지대를 이루기 때문에 집수나 배수가 용이했을 것으로 보이며 수구도 설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유물로는 정상부로 오르는 진입로와 우물지 주변에서 어골문이 시문된 고려시대 기와편과 토기편이 채집된다. 그리고 해발 250m 봉우리 주위에서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기와편들도 일부 채집되어 축조와 운영에 관계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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