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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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지표조사를 통해 본 여주지역 매장문화재

경기도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여주는 동쪽으로는 원주, 서쪽으로는 이천, 남쪽으로는 음성, 북쪽으로는 양평과 맞닿아 있으며, 강원도와 충청도의 경계되는 경기도의 도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주는 그 중심부를 흐르는 남한강과 주변의 산악이 적당한 조화를 이루어 사람이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여주지역에 형성된 평지는 주변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반으로 하는 물빠짐이 좋은 충적평야와 남한강이 곡류하면서 만들어놓은 비옥한 충적지로 구성되어 있어 매우 양호한 식생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유로의 변함이 거의 없는 사행천이 만들어 놓은 충적지와 하천 중류에서 보기 드물게 잘 발달한 하중도는 사람들이 장기간 정착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여주지역에 다양한 종류의 유적이 조성되는 결과를 낳았다.

여주에서는 그동안 대규모 구제발굴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소규모의 학술발굴을 중심으로 수차례에 걸친 주제별 지표조사가 행해졌다. 따라서 조사된 유적이 시대별 편중이 심하고 한 시대의 문화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주지역의 유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지속적인 조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유적이 계속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의 시대별 문화상이 곧 정리될 것이다.

여주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적 가운데 구석기유적은 흔암리유적의 발굴조사에 이은 주변지역 지표조사에서 멱곡리>에 후기구석기와 연계시킬 수 있는 석기가 수습된 것으로 보고되었고, 점동면 단현리에는 몸돌, 여러면석기, 찍개, 긁개, 톱니날 등이 수습되었다. 또한 영릉 뒤의 갱신세 퇴적층에서는 격자가 수습되었다. 지금까지 여주에서 가장 많은 구석기가 수습된 곳은 능서면 내양리와 백석리로, 남한강변의 낮은 구릉상에 위치한 이 유적에서는 찍개, 주먹도끼, 여러면석기 등 100여 점의 석기가 수습되었다. 내양리, 백석리의 퇴적층은 인근에 있는 양평 병산리유적 및 임진강, 한탄강 유역에 위치한 구석기유적 퇴적층의 특징과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주의 신석기유적은 아직까지 발굴조사된 것은 없지만 신석기유적의 일반적 입지나 주변지역의 조사결과로 볼 때 반드시 신석기유적이 존재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여주에서 신석기유물이 발견된 곳은 주로 남한강변의 충적지와 그 주변의 구릉들로 흔암리, 연양리 등이 있으며, 1997년 한림대학교박물관의 상리지역 시굴조사에서도 빗살무늬토기편이 수편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지난 1972년부터 1977년까지 발굴조사되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흔암리유적과 그 인근의 철울말, 멱곡리유적이 있고, 대신면의 파사산성 내에서는 해발 200m 정도의 고지에서 무문토기가 출토되는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여주읍 연양리에서는 홍수로 잘려나간 단애면에서 많은 양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수습된 적이 있다. 이밖에 북내면 석우리와 흥천면 외사리에서 선돌과 고인돌 등이 확인되었다.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은 원삼국시대 유적인 연양동에서 조사되어 이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반드시 존재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주의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산성과 주거지, 고분 등이 확인되었다. 여주와 양평의 경계에 위치한 파사산성에서는 6세기 후반에 속하는 신라토기 및 초기 백제주거지가 확인되었고, 술천성 등의 산성에 대한 기록도 문헌에 보인다. 고분은 상리, 매룔이 고분군과하거리 방기미골고분, 보통리 고분 등이 조사 발굴되었고, 금사리, 연라리, 내룡리, 이호리 등에서도 성격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고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우만리, 강천리, 보통리 등지에서도 선사 및 역사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여주지역의 가마터와 도자문화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여주지역의 귀족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로서는 최근에 발굴조사된 북내면 중암리유적이 있다. 중암리유적은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여주지역의 가마터를 지표조사 과정에서 해무리굽완과 화형접시, 갑발 등이 수습되어 고려초기의 가마터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1~2003년까지 2차에 걸쳐 경기도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운영시기를 10~11세기로 추정할 수 있는 백자가마터로 밝혀짐에 따라 도자사 연구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이 유적은 여주지역이 이미 고려 초부터 도자생산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교유적에서도 모두 68개소가 존재하며 지역별로는 북내면에 전체 유적 중 2/3가 존재하는 것과 같이 북내면에 유적 밀집도가 높다. 이것은 북내면에 고달사지, 신륵사 등의 대형 사찰이 존재하고 있음에 기인한다. 유적 중 고달사지는 현재 5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전체 가람의 배치와 역사적 성격들이 밝혀지고 있으며, 현재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고달사, 원향사 등은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밝힐 수 있는 대형사찰들로 경기도내 불교유적을 대표할 만한 유적들이다. 또한 이 외에도 당시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절터, 불교 석조물들이 여주시내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옛 절터 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현상변경을 방지하고 학술조사계획을 수립하여, 유적의 역사적 성격과 규모, 현황 등을 파악해야 할 것이며, 석조물 등에 대한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여주지역에서는 주택개발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상지역이 남한강 본류와 연한 구릉지역이어서 고고유적의 파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소규모의 건설행위시에도 문화재와 관련한 조사를 시행한다면 남한강유역의 선사, 고대,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중부지방 역사문화의 연구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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