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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지금까지 조사된 여주지역의 조선시대 유물산포지는 단현리 유물산포지1(여주시 단현동 부라우마을 60번지), 단현리 유물산포지2(여주시 단현동 산1-5임 일대), 단현리 유물산포지3(여주시 단현동(은행박이) 189-1전, 2전, 산17-1임대), 멱곡리 유물산포지(여주시 멱곡동 산17-1임 일대), 신진리 유물산포지3(여주시 신진동 57-2 일대), 연라리 유물산포지1(여주시 연라동 68-1전 일대), 연라리 유물산포지2(여주시 연라동 105전 일대) ,연양리 유물산포지5(여주시 연라동 49전 일대), 우만리 유물산포지1(여주시 우만동(칠울말 염창골) 215답 일대), 우만리 유물산포지2 (여주시 우만동 41전 일대), 우만리 유물산포지3(여주시 우만동 41전 일대), 상품리 유물수습지(산북면 상품1리 86-3전 일대), 송현리 유물산포지(산북면 송현리 252-1전 일대), 용담리 유물산포지(산북면 용담리 340-3전 일대), 후리 유물산포지(산북면 후리 84-2전), 궁리 유물산포지1(금사면 궁리(뒤밀마을) 189임, 198-1답·2답 일대), 궁리 유물산포지2(금사면 궁리(큰멀언리골) 141전 일대), 금사리 유물산포지1(금사면 금사리(당골) 124전 일대), 금사리 유물산포지3(금사면 금사2리 387, 387-2전 일대), 도곡리 유물산포지1(금사면 도곡리 507-3전 일대), 도곡리 유물산포지2(금사면 도곡리 470-6전, 472-전, 산 46-1임 일대), 외평리 유물산포지1(금사면 외평리 301답 일대), 외평리 유물산포지2(금사면 외평리(절밑골) 387답, 388전 일대), 외평리 유물산포지3(금사면 외평리 368-1전 일대), 전북리 유물산포지1(금사면 전북리(큰멀언리골) 397답, 398전 일대), 전북리 유물산포지2(금사면 전북리(작은 멀언리골) 산 55임 일대), 계신리 유물산포지1(흥천면 계신리 산92-5임, 537-14전 일대), 귀백리 유물산포지2(흥천면 귀백리 111-1·2전, 112전 일원), 다대리 유물산포지1(흥천면 다대리 382전, 383전 일대), 문장리 유물산포지(흥천면 문장리(조장이마을) 210전 일대) 등 160여 군데가 존재한다.

조선시대 여주지역의 모습을 살펴보는 데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부분은 행정구역 및 읍호의 변경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야 여주지역은 비로소 오늘날의 권역에 준하는 행정구역과 명칭이 갖추어졌다. 조선시대 지방조직은 부, 목, 군, 현의 구분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군현의 실질적인 통치과정에서는 군사조직과 연계하여 ‘목’이 설치되어 주변 군현을 관장하였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상급조직의 역할을 수행하는 목에 대해서는 따로 주(州)자를 붙여서 차별성을 부여하였다.

조선시대의 읍호 부여의 이러한 관례에 따라 여주의 경우도 세종대왕릉의 천장과 더불어 목으로 승격되었으므로 읍호도 ‘주’자를 넣은 명칭으로 바꾸었다는 내용이다. 다만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여주가 당시 여주목으로 읍격이 높아졌다고 해서 다른 일반적인 목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군현을 관할하는 기능까지 수행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그러한 역할은 인근의 광주목이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여주목은 어디까지나 군사행정적으로는 광주목의 지휘를 받으면서 왕릉의 소재지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던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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