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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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지금까지 조사된 여주지역의 삼국시대 유물산포지는 멱곡리 유물산포지(여주시 멱곡동 산17-1임 대), 연양리 유물산포지2(여주시 연양동 310-7전 일대), 연양리 유물산포지3(여주시 연양동 534-1일대), 연양리 유물산포지4(여주시 연양동 70전 일대), 연양리 유물산포지5(여주시 연양동 49전 일대), 우만리 유물산포지1(여주시 우만동(칠울말 염창골) 215답 일대), 전북리 유물산포지4(금사면 전북리 268전, 269답 일대), 다대리 유물산포지2(흥천면 다대리 385전, 386전 일대), 다대리 유물산포지3(흥천면 다대리 412전, 413-1·2전 일대), 신근리 유물산포지1(흥천면 신근1리 765-2대, 756-10임, 788번지 일대), 신근리 유물산포지2(흥천면 신근1리 736-12임 일대), 신근리 유물산포지3(흥천면 신근1리 산90-1임, 724-10·11답 일대), 천서리 유물산포지1(대신면 천서리 580-2임 일대), 적금리 유물산포지3(강천면 적금리(신대촌) 504전 일대), 태평리 유물산포지1(가남읍 태평1리 마구실 463-10, 470-1, 471전 일대), 태평리 유물산포지2(가남읍 태평1리 377전 일대), 도리 유물산포지1(점동면 도리 117번지 일대) 등이 있다. 이 지역에서는 보통 백제토기 등이 수습되고 있다. 4세기 이후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이 본격적인 정복전쟁을 한강 중·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함에 따라 그 연변에 위치한 여주지역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본래 백제의 영역권에 놓여 있던 술천군과 골내근현은 5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고구려의 판도에 들어가고 다시 6세기 중반 이후에는 신라의 영역으로 재편되는데, 이 과정에서 신라는 지방군단인 10정의 하나인 골내근정을 여주에 설치하게 된다.

6세기 중반 이후 여주지역이 신라의 영역하에 놓인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문헌자료 및 관방유적 이외에도 고분유적을 주목해볼 수 있다. 고분제도는 종교제의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보수성을 갖고 있는데 여주지역에는 이 시기 신라문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수의 고분유적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미 발굴조사를 거친 유적으로는 보통리, 연양리, 매룡리, 하거리, 상리 고분군이 있으며, 지표조사를 통해서는 연라리, 금사리, 내룡리 고분이 확인되었다. 특히 이 가운데 매룡리 고분군은 최대 196기, 위치 확인이 가능한 고분 139기로 경기지역 최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특히 대규모 백제유적으로 추정되는 신근리 유물산포지는 남한강과 합류되는 양화천 하류의 저평한 구릉상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대옹, 호, 심발형토기 등 백제토기의 주요기종이 확인되었다. 특히 남한강변의 타 유적과 비교해볼 때 타날문양이 특이하며 고식의 문양에 해당되지만 모든 기종이 경질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근리 유물산포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밀 학술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지만 유물의 분포나 형태를 미루어 지역색이 강한 토기를 제작한 세력집단의 백제시대 취락유적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여주지역은 남한강 남안에서 합류되는 지류와 인접한 저평한 구릉지역에서 백제유적이 여럿 확인되는데 복하천변의 흥천면 다대리와 양화천변의 가남읍 태평리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지형은 남한강이 곡류한 충적지에 위치한 연양리유적과 비교되는 점이다. 이러한 무문토기 산포지와 백제토기 산포지의 분포양상은 남한강 본류를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는 특성을 보이며 석우리, 내룡리, 사곡리, 신근리, 다대리 등은 지천에서 확인되어 향후 더 많은 유적들이 찾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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