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문화유산 선사·고고유적 유물산포지 여주시 매장문화... 역사시대 철기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철기

지금까지 조사된 여주지역의 철기(삼국시대 전기) 유물산포지는 능현리 유물산포지(여주시 능현동 311번지 일대), 단현리 유물산포지(여주시 단현동 241-1대 일대), 신진리 유물산포지(여주시 연양동 159-20전 일대), 연양리 유물산포지(여주시 연양동 417전 일대), 당산리 유물산포지(대신면 당산2 44-1전 일대), 천서리 유물산포지(대신면 천서리 500전 일대), 가야리 유물산포지(강천면 가야2리 627번지 635전 일대), 굴암리 유물산포지(강천면 굴암리 254전, 산20-1임 일대), 이호리 유물산포지(강천면 이호리 276번지 일대), 적금리 유물산포지(강천면 적금1리 163답, 164전 일대), 도리 유물산포지(점동면 도리 117번지 일대)등이 있다.

여주지역은 일찍부터 마한 55국의 하나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지는 현재의 흥천면 일대로 비정되었다. 여주군 관내에는 이미 흔암리 선사주거지가 알려져 있고, 신접리 고인돌을 비롯하여 석우리와 처리 등에서 선돌유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뒷받침된다.

여주지역을 포괄하는 한강유적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적 발전을 보인 정치체의 명칭은 진국이었다. 즉, 중국 고대 사서의 하나인 『사기』의 조선전에 따르면 진번의 곁에 진국이 있어서 중국의 천자를 뵙고자 서를 올리려 하는데 위만조선의 우거왕이 중간에서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그런데 이때 진번의 위치는 대체로 황해도 방면으로 비정되고 있기 때문에, 진국의 위치는 대체로 예성강 이남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진국의 위상 및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논란이 많은 점을 고려할 때, 특히 백제의 건국과 관련된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마한과 관련된 언급은 있으나 진국과 관련된 기사는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아직은 좀더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여주지역의 연양동에는 우선 여주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즉 흔암리 선사주거유적이나 신접리, 석우리 등의 고인돌, 선돌 등이 이 일대의 권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이 고려된다. 그리고 연양동의 취락유적에서는 모두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는데 3세기 중반~4세기 초기의 원삼국~초기 백제시대에 이르는 유물과 철기생산의 면모도 추정되고 있다.

한편 처리나 하거동 등 제3지역의 가능성 여부를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선돌이나 백제와 연관성이 고려되는 다수의 고분의 존재 등을 주목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헌자료 및 관련 유물, 유적의 분포상을 고려할 때 오늘날의 여주 중심지역에도 별도로 하나의 정치체가 성립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그 정치체는 문헌자료에 의하면 고구려의 골내근현에 기원을 둘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술천군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백제초기 또는 나아가서 마한연맹 단계까지 소급해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마한연맹, 백제초기, 또는 한성백제기의 여주지역에는 오늘날의 이포 부근의 술천군과 여주읍 부근의 골내근현 등 적어도 2개 이상의 정치체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여주지역에 산포하는 철기시대 유물산포지는 적절한 보호조처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발전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시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