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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청동기 유물산포지의 특징

지금까지 조사된 여주지역의 청동기 유물산포지는 사곡리 무문토기 유물산포지(점동면 사곡리 모래실부락 산21-1 임 일대), 교리 유물산포지(여주시 교동 142-2답 일대), 연양리 유물산포지3(여주시 연양동 534-1 일대), 송촌리 유물산포지(대신면 송촌2리 산52임 일대), 중암리 유물산포지1(북내면 중암1리(깊은안이재골)510전, 511전 일대), 굴암리 유물산포지2(강천면 굴암리 277-2전 일대), 도리 유물산포지1(점동면 도리 117번지 일대), 삼합리 유물산포지3(점동면 삼합리(대우마을)52-1전 일대), 장안리 유물산포지1(점동면 장안2리 366전 일대)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대부분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에 입지하는 곳과 강안에 형성된 충적지대에서 확인되는 두 가지 경우로 나타난다. 발굴조사된 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주거지들이 확인된 흔암리유적과, 북방식 고인돌로 알려진 신접리 고인돌유적이 있다. 지표조사된 유적으로는 도전리 고인돌, 신접리 고인돌, 상거리 고인돌, 석우리 고인돌, 외사리 고인돌, 처리 선돌, 석우리 선돌, 가야리 선돌 등 거석문화와 관련한 청동기시대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철울말, 멱곡동, 연양동, 사곡리 등지에서 무문토기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또한 파사성 내에서는 해발 200m 정도의 고지에서 무문토기가 출토되는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거석문화와 관련한 고인돌과 선돌의 분포상으로 볼 때 주변지역에서 주거지와 관련한 유물들이 확인되진 않았지만 일정 거리 내에 이와 관련한 유구들이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주지역의 경우 청동기유적과 관련해서는 점동면의 흔암리유적이 우리나라 청동기전기의 농경취락유적을 대표하는 선사주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유적지는 남한강의 청미천과 합류하는 입구부에 조금 못 미처 위치하고 있는데, 1962년부터 토기와 석기 등이 지표에서 채집되면서 알려져 서울대학교 발굴팀에 의해 남한강과 평행하는 표고 123m의 구릉상에서 14기의 집터유적이 발굴되었다.

집터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구릉상의 풍화된 화강암반을 ㄴ자로 파고 지붕을 씌운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12호 집터는 9.7×3.7m의 크기에 도합 39개의 기둥구멍이 벽선과 중앙선에 3열로 배치되어 있어서 맞배지붕의 구조로 추정해볼 만한 것이었다. 출토된 유물은 다양하여 구멍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마제석검, 반달돌칼, 돌도끼 등 30여 점의 전형적인 청동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또한 토기 안의 흙 속에서 탄화된 쌀을 비롯하여 겉보리, 조, 수수 등의 곡물이 발견됨으로써 청동기시대 농경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확인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농경문화가 벼농사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탄화미의 발견은 중요한 성과의 하나였는데 이로써 우리나라의 벼농사문화가 이미 서기 전 8~6세기부터 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한편 여주 관내에는 흔암리 선사주거지 외에도 다수의 청동기시대 관련 유물·유적이 확인되었다. 먼저 연양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토기편도 조사되었다. 거석유적과 관련해서는 금당천과 완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북내면 신접리에는 1기의 지석묘가 위치하고 있으며, 흔암리유적과 이웃한 마을인 점동면 처리와 금당천변의 북내면 석우리에서는 각각 1기의 선돌이 조사되었다. 특히 석우리에는 최근의 조사를 통해 다수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렇듯 여주 관내에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대표적 농경취락유적의 하나인 흔암리 선사주거지를 비롯하여 고인돌, 선돌 등의 거석유적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강유역의 청동기문화상을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의 하나이다. 특히, 이들 유적이 흔암리유적을 중심으로 그 앞뒤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청미천과 금당천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권역으로도 묶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여주지역의 청동기문화상과 관련해서는 체계적인 계획 하에 종합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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