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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리 고분군

이 고분군은 강인구가 1969년 여름 지표조사시 여주에 들렀다가 당시 군청 문화계장인 한만식(韓萬植)으로부터 대신면 보통리에 거대한 고분이 수기 소재한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됨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70년 10월에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여 7기의 고분이 존재함을 확인하고, 그중의 한 기가 정식 발굴조사되었다.

이후, 간헐적인 확인조사만이 이루어지다가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고분군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新岩里Ⅱ』에 부록으로 실었다. 우선 1989년 당시 조사 내용과 이번 조사된 내용을 중심으로 현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분군은 여흥동에서 양평군 개군면으로 가는 3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대신면 소재지로 통하는 사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대신면소재지로 통하고, 우회전을 하여 소로를 따라 남한강변 쪽으로 가면 보통마을에 이르게 된다. 유적은 이 보통마을의 동쪽 야산에 자리한다. 유적의 동남쪽으로는 대신농협가공공장이 자리하고, 북쪽 37번 국도 쪽으로는 궁전파크라는 모텔이 있다.

유적은 해발 169m의 보통마을 뒷산에서 남주(南走)한 뻗어내린 주능선이 ∧형으로 갈라진 두 개의 가지능선의 능선상에 자리한다. 1970년 조사당시에는 7기만이 보고되었으나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에서는 북쪽 능선에 6기, 남쪽 능선에 8기, 도합 14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봉토의 외형이 잘 노출되어 있었으며, 모두 도굴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5년이 지난 이미 조사에서는 당시에 심은 묘목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고 잡목이 무성하여 봉토 흔적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14기의 고분 중에서 발굴된 것은 단 1기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에서는 북쪽 능선의 맨 아래에 자리한 6호분이 당시 조사된 고분으로 추정하였다.

1970년에 발굴된 고분은 대형의 원형봉토를 갖춘 횡혈식 석실분이다. 묘실의 평면 형태는 270×244cm의 정방형에 가깝고, 그 남벽 중앙에는 길이 310cm, 폭 82cm의 긴 연도를 달았다. 묘실 북반부에는 시상대를 설치하였는데, 높이 54~58cm에 달하는 고시상(高屍床)이다. 천정구조는 현실 벽체의 네 귀퉁이를 먼지 장대석으로 걸치고 거기서 생기는 내각(內角) 위에 다시 얹는 방식으로 놓아 3단층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거대한 판석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유물은 시상의 상면과 판상석 틈 사이에서 관, 두개골편, 치아, 금동제 이식, 철제도자, 철제 원형구, 관정, 꺽쇠 등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목관의 사용이 주목된다.

이 고분의 축조집단에 대해서는 발굴조사자가 일찍이 말각식 천정을 근거로 고구려무덤으로 파악하였다. 이 글에서도 그의 견해에 동조하여 고구려무덤으로 보고자 한다. 그 근거로는 내륙의 산지구릉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하천의 강안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자리하는 점, 길이 3m에 달하는 긴 연도가 마련된 점, 두침이 발견되지 않고 목관의 사용을 강하게 시사하는 관정과 관장식품이 발견되는 점, 그리고 고구려무덤의 표지적 특징인 말각식 천정을 갖춘 점, 인접지역의 신라고분인 매룡리 고분군과 하거리 고분군과 구조적인 차이를 보이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강유역의 고구려 석실분의 연도가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편재되어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이 고분의 연도는 매룡리·상리·하거리 고분군의 횡혈식 석실분의 연도의 위치와 동일한 중앙식 연도인 사실, 또한 이 고분과 동일한 말각식 천정을 지닌 강원도 통천군 구읍리 어은골 신라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점, 석회를 두텁게 바르는 고구려 석실분의 전통이 확인되지 않은 점, 신라산성임이 분명한 파사성과 지형적으로 연결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 신라 고분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향후 또 다른 고분의 발굴을 통해 새로운 자료가 확보되길 기대할 뿐이다.

한편, 이 고분군의 보존과 관련하여, 주변지역의 개발로 인하여 인위적인 훼손이 매우 우려된다. 향후 고분이 자리한 구릉 일대에 대한 공사신청이 있을 시에는 아무리 소규모 공사라도 사전 시굴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 한편, 이 고분군 중 한두 기에 대한 학술적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그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의거하여 문화재로 지정하여 장기적인 보존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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