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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혈식 석실분

여주 하거동 방미기골에서 발굴 조사된 석실분 중에서 횡혈식으로 분류한 것은 연도가 벽석에서 밖으로 돌출된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사람에 따라서 좀더 세분화하여 횡혈식과 횡구식을 분류하는 경우도 있으나 지나치다 보면 하거동에서 발굴된 석실분들은 횡혈식은 하나도 없고 횡구식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조사된 횡혈식 석실분의 입지는 대체로 산 정상부의 남면 편평 대지, 혹은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곳이다. 땅을 깊이 파서 지하 혹은 반 지하에 묘실을 마련하였는데, 깊이는 가장 깊은 것이 1.65m, 가장 얕은 것이 0.5m, 그리고 평균 깊이는 1.23m에 이른다. 석실 바닥에는 1~3개의 시상대를 생토 위에 단을 쌓아 마련하였는데, 대체로 연도가 달려 있는 단축을 제외한 벽면에 붙여두었다. 시상대 위에는 석침을 두었는데 이것을 근거로 시신을 관 없이 그대로 시상대 위에 안치하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석실 축조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암(granite)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반암(porphyry)도 상당수 섞여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석실분의 벽면을 위로 축조하면서 묘광의 모서리 부분의 각을 많이 죽였고 벽면이 위로 올라오면서 많이 내만되었다. 특히 말각의 요소를 고구려 매장 문화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묘실 위에 객석을 용이하게 얹어 놓도록 묘광을 좁게 만들기 위하여 이 지역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습득한 기술적인 장치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벽면에 위로 축조하여 올라오면서 붕괴를 방지하기 위하여 바위 틈 사이는 작은 바위 조각과 진흙으로 채웠던 것이 관찰되었다. 천정의 형태는 거의 모두 평천정이며 대부분의 경우 다섯 장의 대형 바위를 올려놓아 마감을 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바위는 대체로 장대석이 많이 이용되었으나 한두 장의 판상석이 사용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연도는 거의 남 단축 벽의 중앙에 설치하였는데 묘광 바닥에서 2~4단까지 벽을 쌓고 그 다음 연도를 위해 비워 놓고 벽면을 쌓았다. 연도의 길이는 거의 모두가 1m 미만이나 3호와 4호의 경우 각각 1.4m, 1.47m에 이르러 비교적 긴 것도 있었다.

묘광이 지하에 축조된 탓에 배수로의 설치는 애당초 불가능하였다. 만약 석실이 침수가 되더라도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빠지게 되는 자연적인 배수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평면형태는 대체로 장방형이 많고, 무덤 장축의 방향은 남북 중심에서 동쪽 혹은 서쪽으로 30~40도 기울어진 것이 58% 정도이고, 동서 중심에서 북쪽으로 30~40도 기운 것이 대략 42% 된다. 장축의 방향이 동서쪽으로 난 것은 방위의 개념보다는 등고선 방향으로 장축이 나게 된 것으로 지형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출토된 부장품은 석실분의 규모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아주 빈약한 편이다. 방미기골 석실분의 상당수가 도굴되어 약간의 유물들이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도굴이 전혀 되지 않았던 처녀분의 경우도 유물은 많지 않은 편이어서 당시에 유물을 많이 납입하지 않는 매장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출토된 유물들은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간혹 청동제, 금동제, 그리고 철제 유물이 반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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