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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이 석조승탑은 고달사지 중심 사역에서 동편으로 골짜기가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원위치로 확실시된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여러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승탑이기도 하다.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까지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기단부는 평면 사각형의 지대석과 하대석 역할을 겸하고 있는 석재, 귀부와 운룡문이 함께 조각된 중대석 등으로 결구되었다. 지대석은 4매의 판석형 석재를 결구하여 마련하였는데 상면에 복련문을 넓게 장식하였다. 연화문은 모서리에 1엽씩 배치하고, 각 면은 가운데 배치된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조각되었다. 각각의 연화문은 외곽에 일정한 너비로 1조의 음각선을 두어 구분되도록 하였으며, 4면에 단판인 총 24엽을 거의 수평으로 조식하였다. 연화문대 위에는 낮은 받침을 모각하고 그 위에 추가하여 각형 1단의 받침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별석형의 중대석 괴임석을 끼웠는데 석탑의 상대갑석과 같이 부연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대갑석에서 갑석부연의 높이가 갑석면보다 낮게 마련되는데, 이 승탑은 갑석면과 갑석부연의 높이가 동일하다. 별석형 석재 상면에는 낮은 1단의 중대석괴임을 두었다.

중대석은 1석으로 귀부를 가운데에 놓고 귀부를 중심으로 구름문과 용이 가득 감싸고 있는 귀부받침 운룡문석이다. 귀부는 귀두를 서쪽으로 틀고 있어 역동성을 보이고 있다. 귀부는 운룡문 속에 가려져 있지만 귀두 부분, 꼬리 부분, 발가락을 드러내고 있다. 귀부의 발가락은 앞발은 5지이며, 뒷발은 3지이다. 그리고 목줄기와 귀신에 주름문이 반복되었다. 또한 귀갑대에도 주름문이 표현되었다. 귀갑문은 1조의 음각선으로 육각형을 이루도록 하였으며, 귀부의 뒷부분에는 민무늬형 꼬리가 표현되었다. 귀부의 귀두가 있는 좌우에는 각각 1마리의 용이 귀두를 향하고 있으며, 앞발을 힘차게 뻗어 귀두를 향하고 있다. 후면에도 귀부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마리의 용이 가운데 있는 보주를 향하고 있다. 보주는 화염형으로 좌우에 배치된 용들이 한발씩을 길게 뻗어 발가락으로 받치도록 하였다. 용신에는 비늘이 가득 표현되었으며 용두는 귀두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구름문은 소용돌이처럼 돌돌 말린 형태로 돋을새김이 강한 편은 아니다. 중대석 상부에는 평면 팔각형의 갑석형 받침이 있고 그 안쪽으로 각형 1단의 상대석괴임이 있다. 상대석은 1석으로 돋을새김이 강한 연화문이 장식되었다. 연화문은 총 8엽의 앙련문이 배치되었는데, 각 연화문 사이에는 간엽이 넓게 표현되었다. 연화문 외곽에는 1조의 음각선을 일정한 너비로 돌려 지대석 상면에 조식된 연화문과 동일한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다. 상대석 하부에는 높고 낮은 각형 2단의 받침이 있고, 상부는 갑석형 받침과 각호각형 3단의 탑신석괴임을 마련하였다.

탑신석은 평면 팔각형으로 4면은 외곽에 돋을대를 새겨 사각형으로 구획하였으며, 나머지 4면은 사천왕상을 1구씩 조각하였다. 탑신석은 각 면을 고르게 다듬어 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사천왕상은 높게 부조되었다. 사천왕상은 하부에 2구는 귀령좌, 2구는 운문좌를 마련하였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으며 몸에는 두꺼운 갑옷을 걸치고 좌우에 천의가 휘날리도록 하였으며, 손에는 각각의 방위에 해당되는 지물을 들고 있다. 옥개석은 하부에 탑신석과 연하는 부위에 각호각형의 3단 받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넓은 받침을 두어 4면에는 비천상, 나머지 4면에는 운문을 배치하였다. 옥개석 하부 각 면은 3조의 종선문과 그 가운데에 화문을 배치하여 구획하였다. 비천상들은 유려한 천의를 길게 휘날리고 있으며, 손의 상태로 보아 합장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옥개석의 처마부는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합각부에는 1조의 음각선을 깊게 파서 낙수홈을 마련하였다. 낙수면은 유려한 현수곡선을 이루도록 하였으며, 끝부분은 일정한 두께로 치석되었다. 옥개석 상부의 마루부는 각 면이 만나는 지점을 뾰족하게 치석하였으며, 처마 쪽으로 내려가면서 높고 굵어지도록 하였다. 마루 끝에는 귀꽃을 장식하였는데, 귀꽃은 고사리문이 좌우대칭을 이루고 그 위에 화문이 넓게 배치되었다. 옥개석 정상부에는 여러 단의 상륜받침이 있고 그 위에 팔각형의 노반석이 마련되었다. 노반석 상면에는 복련의 연화문이 8엽 장식되고, 다시 그 위에 8엽의 연화문이 조식된 원형의 보개석 받침이 결구되었다. 보개석은 마루 끝에 귀꽃이 표현되는 등 옥개석과 동일한 형식으로 마련되었다. 보개석의 낙수면은 둥글게 경사를 이루면서 처마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보개석 상부에는 원형의 보륜석이 있으며, 그 위에는 앙화형 연화문이 4엽 장식되고 간엽이 넓게 배치된 보주받침석이 있고 화염형 보주가 꼭대기에 올려져 있다.

이와 같이 이 승탑은 각 부재의 결구와 치석 수법, 세부적인 조각 수법 등이 우수하다. 특히 탑신부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양식을 유지하면서 기단부는 지대석을 사각형으로 하여 귀부받침 운룡문석을 중대석으로 마련한 점 등은 독특한 결구 수법과 장인의 기발한 착상을 엿보게 한다. 이외에도 중대석을 귀부받침 운룡문석으로 마련한 경우는 선림원지 석조승탑, 고달사지 석조승탑, 경북대학교 박물관 석조부도(보물 제135호) 등에서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과 같은 양식적 계열을 갖는 석조승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고달사지 석조승탑은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양식을 채용하고 있지만 원종대사 혜진탑은 지대석의 평면이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중대석의 조각 수법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탑신석의 각 면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치석 수법도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점은 두 석조승탑의 건립 시기를 추정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어쨌든 이 석조승탑은 원종대사 찬유(869~958)의 생몰년과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초기에 건립된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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