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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이 탑비는 고달사지 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의 제액부에 주인공이 음각되어 있으며, 비문이 전하고 있어 건립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귀부와 이수이다. 그리고 귀부 외곽으로 초석과 긴 사각형 돌이 구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의 기록에도 비각이 건립되었던 사실을 전하고 있다.

지대석과 귀부는 동일석으로 마련되었다. 귀부가 대형인 것으로 보아 원석도 상당한 규모의 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대석은 모서리를 부드럽게 호형으로 깎고, 그 가운데에 1단의 굴곡을 두었다. 귀신(龜身)은 낮게 마련되었으며 주름문이 반복 표현되었다. 귀신의 사방에 발이 나왔는데 발가락은 5지이며 발톱이 길게 표현되었다. 그리고 앞발 뒤로는 갈퀴형 문양이 휘날리고 있다. 귀두의 목줄기는 앞면에 일정한 너비로 주름문이 표현되었고 밑 부분에 받침이 있다. 귀두는 입 아래쪽으로 길게 수염이 나있고 굳게 다문 입 사이로 이빨이 드러나 있다. 귀두의 콧구멍, 부릅뜬 두 눈, 귀의 표현 등이 역동적이다. 귀부의 귀갑대는 일정한 너비로 둘렀는데, 그 안에 주름문이 표현되었다. 귀갑문은 3조의 돋을대를 육각형으로 구획하여 표현하였으며 그 안에 명문이나 별다른 장식은 없다. 그리고 귀두에서 꼬리 쪽으로는 일정한 너비로 주름문이 반복된 등줄기가 있어 귀갑을 좌우로 나누고 있다. 귀갑 상부 가운데에는 넓게 구름문을 돌리고 비좌를 마련하였다. 귀두와 귀갑은 역동적이면서도 괴체화되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초기에 건립된 귀부들의 치석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비좌는 면석부에 운문이 가득 조각되었으며 상부에는 연화문이 배치되었다. 연화문은 단판으로 각 면이 가운데 배치된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형태이며 총 24엽이 장식되었다. 연화문 안쪽으로 비신괴임과 사각형의 홈이 마련되었다. 이수부는 하부에 작은 연입의 단판 앙련문이 장식되었다. 비좌의 연화문과 동일하게 가운데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배치되었다. 이수부에 표현된 앙련문은 총 36엽이며, 연화문 위로는 갑석형의 받침이 있고 그 위로 높게 운룡문을 조각하였다. 이수부의 제액부는 앞면에 일정한 너비의 구름문을 사각형으로 구획하여 마련하고 그 안에 탑비 주인공을 음각(자경 7~8cm)하였다. 그리고 제액 좌우에는 각각 1마리의 용이 서기를 내뿜으며 받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귀신 얼굴을 조각하였으며 상부에는 화염형 보주가 올려져 있다. 이수부는 앞면 좌우측에 각각 1마리의 용이 입에 보주를 물고 바깥쪽을 향하여 웅비하고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가운데에 1마리 용이 하늘을 향하여 서기를 내뿜고 있으며, 좌우에는 각각 1마리 용이 가운데를 향하여 서기를 내뿜고 있다. 이수부에 표현된 용의 용신에는 비늘이 가득하다. 이수부는 구름과 용들의 표현이 역동적이고 볼륨감이 넘치고 있어 정교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수 상부에는 원형의 홈이 있어 원래는 보주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수부도 귀부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초기에 건립된 이수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귀부와 이수의 전체적인 치석 수법은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된 탑비들의 영향을 받아 고려초기 안정된 사회 기조 속에서 건립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불교의 발전과 함께 불교미술의 발전상이 반영되어 있다. 주인공인 원종대사 찬유는 탑비문에 의하면 958년(고려 광종 9) 8월 20일 고달사에서 입적한다. 그러자 광종은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이어서 시호와 탑호를 내리고 진영(眞影)을 조성하게 한다. 그리고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석조부도와 탑비를 건립하게 한다. 그런데 비문 음기에 의하면 탑비는 975년(고려 광종 26) 10월에 세웠는데, 건립 공사는 966년(고려 광종 17) 시작하여 977년(고려 경종 2)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비각 건립까지 모든 공사가 완료된 시기가 977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문이 각자되어 탑비가 세워진 시기는 975년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종대사 찬유가 958년 입적하자 광종은 곧바로 김정언(金廷彦)에게 비문을 찬하도록 하였으며, 966년경에는 탑비 건립 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문이 975년경에 완성되자 이정순(李貞順)이 비문을 각자하였으며, 각자가 완료되자 비각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977년에 완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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