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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대장각기비

대장각기비는 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된 비문을 보호하기 위해 보제존자 석종비와 동일한 수법으로 둘레에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비의 형태는 조형면에서 보제존자석종비보다 훨씬 간략해져 있다.

비신의 높이는 133㎝, 폭은 88㎝로 비신 둘레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고려 말 새로 유행된 석비형식으로 보제존자석종비와 동일한 수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연질의 대리석 비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신륵사에는 경율론 3장을 인출하여 이를 수장하던 대장각이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었다 한다. 서쪽이라면 지금의 명부전 쪽이 되리라 추정된다.

현재 이 비는 신륵사의 동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비신은 좌단이 깨어져 몹시 손상되어 글자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이 비를 세운 연대를 밝힌 부분에도 손상이 있어 이를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383년(우왕 9, 홍무 16)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 비는 나옹의 석종비보다 4년 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비문은 자경 2㎝의 해서(楷書)로 예문관제학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진현관제학 권주(權鑄)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한 승려와 신도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이 비의 형태는 신라 이래 건립되던 일반적인 형식과는 매우 다르다. 즉 귀부와 이수 등의 형태는 볼 수 없고, 그냥 복련대석(覆蓮臺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와 같은 비대와 옥개석은 그 조형이 나옹의 석종비보다 훨씬 간략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대에서 뿐 아니라, 특히 옥개에서 공포와 와구 등의 조각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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