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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보제존자 석종의 뒤편에 건립된 높이 212㎝ 규모의 석비로, 나옹화상의 일대기와 석종비의 건립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신은 대리석을 사용했음에 비해, 비좌와 이수는 화강암으로 조성했다. 높직한 판석을 사용해 3단의 지대석을 구축한 후 비좌·비신·이수를 차례로 놓았다.

비좌 역시 3단으로 구성했는데, 하단에는 앞·뒷면에 5엽씩, 양 측면에 2엽 그리고 모서리에 각 1엽 등 모두 16엽의 단판복련(單瓣覆蓮)을 조각했다. 중대석에는 앞·뒤 면에 각 2구씩 그리고 측면에 각 1구씩 모두 6구의 안상을 새겼는데, 내면에는 동물문양을 조식하고 있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동일한 양식의 연화문을 조식했는데, 하대석이 단판인 점에 비해 복엽복판의 앙련인 점만 다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조성한 2면비로, 양 측면에는 화강암으로 기둥을 세워 비신을 감입했다. 기둥의 전면에는 2조의 세로선문이 양각되어 있다. 비문은 주로 나옹화상의 생애와 사상 등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더욱이 뒷면에는 200여 명에 달하는 문도(門徒)와 석종과 비의 건립에 관여한 도속(道俗)의 명단이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李穡)이 짓고 명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썼는데, 자경(字徑) 2㎝ 정도의 해서체로 썼다.

옥개석은 우진각 지붕형으로 하면에는 공포와 서까래가 상단의 낙수면에는 기와골이 정연히 모각되어 있다. 용마루의 양 끝에는 각각 1구씩의 용두가 표현되었다.

이 비석은 전통적으로 귀부와 이수를 구비한 것으로부터 장방형의 비좌와 지붕형의 옥개석을 구비한 양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1379년(고려 우왕 5)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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