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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 삼조사도

□ 크기(각폭) : 가로 80㎝, 세로 133㎝

나옹화상의 조각상을 봉안한 조사전의 후벽에 모셔져 있던 이 그림은 조선 건국에 영향이 있었던 무학대사와 그의 스승인 지공·나옹의 진영도를 함께 모신 진영도이다.

지공(?~1363)은 인도 마갈타국의 왕자로 법명은 제납박타(提納薄陀)이며, 가섭존자의 108대 법손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1328년에 고려에 와서 금강산 법기도장을 예배하고 돌아가 입적한 후, 1372년에 양주 회암사에 부도가 세워졌다.

나옹(懶翁, 1320~1376)의 법명은 혜근(慧勤), 속성은 아씨(牙氏)로, 북경에 가서 지공(指空)의 문하에서 공부하다 선지식을 찾아 수행하였다. 지공의 법의와 불자를 전수받은 나옹은 1358년에 귀국한 후, 1371년에 왕사(王師)가 되어 “대조계선교도총섭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보제존자(大曺溪禪敎都摠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라는 호를 받았고, 후에 회암사를 크게 중건하여 문수회를 열고 낙성하였다. 1376년에 신륵사에서 입적하니, 이 색이 글을 지어 세운 비와 부도가 회암사에 있다.

무학(無學, 1327~1405)의 법명은 자초이고, 속성 박씨이다. 공민왕 때 북경에 가서 지공을 뵙고, 다음 해 법천사에서 나옹을 만났으며, 1356년에 고려로 돌아왔다. 귀국한 나옹이 천성산 원효암에 있을 때, 찾아뵙고 불자를 받았으며, 곧 의발도 전해 받았다. 나옹은 회암사에서 낙성회를 베풀 때, 무학을 수좌로 삼았고, 나옹이 입적한 후에는 두타행을 했다. 고려 말에 왕사가 되었으나 사퇴했다. 1392년에 조선 태조가 왕사로 삼고 “대조계종사선교도총섭전불심인변지무애부종수교홍리보제도대선사묘엄존자(大曹溪宗師禪敎都摠攝傳佛心印辯智無碍扶宗樹敎弘利普濟都大禪師妙嚴尊者)”라는 호를 내리고 회암사에 있게 했다. 1405년에 금장암에서 입적했다.

삼조사도의 화면구성은 중앙에 나옹을, 좌측에는 지공, 우측에 무학을 그렸는데, 이들은 모두 화문석을 깔고 가사·장삼을 걸치고 의자에 앉은 의자상이다. 나옹은 오른손으로 고승의 지물인 불자를 들고서 좌안칠분면을 하였는데, 향좌측 위쪽에 “고려국공민왕사나옹대화상(高麗國恭愍王師懶翁大和尙)”이라고 적혀 있다. 지공화상 진영은 일반적인 지공화상 표현형식처럼 관을 쓰고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비스듬한 좌안을 보이며 오른 손으로 불자를 쥐고 있고, 위쪽에는 “서천국박타존자지공대화상(西天國薄陀尊者指空大和尙)”이라 명시하였다. 무학화상 진영은 우안이며, 왼손에 불자를 들었고 향우측 위쪽에 “조선국태조왕사무학대화상(朝鮮國太祖王師無學大和尙)”이라고 쓰여있다. 이 삼조사도는 조선후기 진영도의 통식을 따르고 있으나, 색배합에 있어 어두운 적색과 녹색을 쓰고, 의문(衣文)의 색을 단계적으로 처리한 음영법을 쓴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이모(移模)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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