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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스님의 사리탑이다. 양식상에 있어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전형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형식이 아니라 석종형부도(石鍾形浮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석을 깔아 마련한 묘역에 방형의 넓은 기단을 마련하였는데, 상면에도 박석을 깔고 중앙에 2매의 판석으로 기단을 형성한 후 석종형의 탑신을 놓았다. 기단의 전면과 양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는데, 면석에는 문양을 새겨 변화를 주고 있다. 석종의 신부(身部)는 위로 갈수록 원만한 타원형을 이루다가 어깨 부분에서 수평이 되게 처리하였는데, 상면에는 보주(寶株)를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둔중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건립되는 석종형부도의 선구적인 예로 평가된다.

나옹화상의 부도는 회암사와 신륵사에 각각 건립되어 있다. 양 부도의 건립에 대해 「선각왕사비(禪覺王師碑)」에는

“8월 15일 부도를 사(寺)의 북안(北岸)에 세우고 정골사리(頂骨舍利)는 신륵사에 모시니 그의 입적하신 곳을 표시하려는 뜻이요 석종(石鍾)으로 덮었으니 감히 와전(訛傳)되는 일이 없기 위해서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나옹화상의 부도는 회암사와 신륵사 각각 두 곳에 건립되었고, 이 중 신륵사의 것은 석종으로 덮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회암사의 부도는 선사의 입적 후 3개월 만인 1376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신륵사의 부도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인근에 건립되어 있는 「보제존자사리석종기(普濟尊者舍利石鐘記)」가 1379년(고려 우왕 5)에 각신(覺信), 각주(覺珠) 등의 주관으로 건립된 점으로 보아 이 부도 역시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제존자의 석종은 외형상 방형의 기단위에 탑신을 안치함으로써 계단탑(戒壇塔)의 형상을 따르고 있지만, 2층의 방형기단을 구비한 점에서 자장(慈藏)이 확립한 전통적인 계단(戒壇)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양식은 진전사지 부도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서 김제 금산사 계단을 비롯해 불일사지 계단, 달성 용연사 부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은 통일신라시대에 확립된 팔각원당형의 양식에서 탈피해 통도사 금강계단의 양식을 계승한 부도의 양식이라 하겠다. 아울러 주인공을 알 수 없는 팔각원당형 석조부도 역시 조선초기의 건립으로 추정됨에 따라 신라시대 이래 확립된 전형적인 부도가 건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조부도의 주류는 석종형부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고,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석조부도의 예가 많지 않음을 볼 때 이 부도는 우리나라 석조미술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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