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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삼층석탑

다층전탑 인근의 강변 암반에 건립되어 있는 단층기단을 구비한 평면방형의 3층 석탑이다. 넓은 1매 판석으로 구성된 지대석의 외곽에는 높은 1단의 각형 받침을 마련한 후 중앙에 호각형 2단의 받침을 조출해 기단을 놓았다. 기단은 1매의 석재로 조성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를 모각했다. 갑석 역시 1매의 석재로 놓았는데, 각 면 3구씩 그리고 모서리에 1구씩 모두 복엽 16판의 복련을 조식했다. 중앙에는 낮고 높은 각형 2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부를 놓았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석으로 조성되었다. 매 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었는데, 1층탑신은 2층에 비해 3배 정도 높게 조성되었다. 현재 3층 탑신석은 결실되었다. 옥개석은 3층 모두 잔존하고 있다.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해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면에는 1·2층은 각형 3단, 3층은 각형 2단의 받침이,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조출되었다.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었다. 이상과 같은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신륵사동대탑수리비(神勒寺東臺塔修理碑)」에 언급되어 있는데 이를 다시 적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보제(普濟)는 본사(本寺)에서 입적하시었고, 다비식도 이 언덕에서 거행하였으니 이 사리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마멸) 상고해 보면 거기에 이르기를 사리를 얻은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했으니, 각신(覺信)의 무리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북쪽 언덕에 정골사리를 봉안하였을 것이며 다시 그 나머지를 화장한 장소에 탑을 세워 간직하고 석종을 만들어 보관할 수 있었을 것인가?

이 기록을 볼 때 나옹스님을 다비한 장소가 바로 전탑과 석탑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수습된 사리로 부도를 조성하고, 화장한 장소에 탑을 세웠음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다비식을 거행한 장소에 건립된 탑은 앞서의 전탑과 이 석탑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님의 다비처에 건립한 탑은 3층 석탑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나옹화상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고, 석탑 역시 같은 재료로 건립되었다. 아울러 화강암과 벽돌은 여러 가지 사유에 의한 훼손 시 석탑은 내구성이 보장되지만, 전탑은 흔적도 없이 소멸된다는 재료상의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문에 명시된 다비처에 건립된 탑은 석탑이 더 유력한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화장이라는 장례법식을 보아 스님의 다비식을 거행한 장소로는 전탑의 위치보다는 석탑이 건립되어 있는 암반이 더 유력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강변에서 화장을 하는 경우는 인도의 전통적인 장례의식에서 볼 수 있다. 인도에서는 갠지스강변에 “Gath”라는 화장터를 마련하고 이에서 화장한 시신을 갠지스강에 뿌리고 있다. 따라서 강변에 위치한 사찰에서는 이와 유사한 장소를 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화장이 승려들이 택하는 전통적인 장례법임을 감안할 때 나옹스님 역시 강변을 택해 다비식을 거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석탑 역시 전통적인 가람배치법에 의해 건립된 것이 아니라 나옹의 자취를 기념하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화장지에 세워진 일종의 기념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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