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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극락보전

신륵사의 주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를 구비한 다포집이다. 건물의 규모는 사역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정연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은 기단과, 중앙에 설치한 계단은 조선시대 건축기단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연을 달은 겹처마 지붕과 더불어 기둥 사이에도 공간포(空間包)를 올린 다포계(多包系) 양식의 화려한 건축수법을 보이고 있다. 공포는 내 4출목, 외 3출목 구성으로 집의 규모에 비하여 과도하게 조성되었으며, 쇠서 위에도 연꽃봉오리들을 조각하는 등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길게 뻗어 날렵한 반전을 보이는 지붕의 네 귀퉁이에는 추녀를 받치기 위해 활주를 시설하였다.

신륵사는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의 원찰(願刹)로 지정되어 1472년(성종 3) 대규모의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는데, 극락보전 역시 왕릉 원찰로 지정되면서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800년(정조 24)에 다시 중창한 것이다.

내부에는 나무로 조성한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였는데, 본존의 높이는 1.5m, 협시보살상은 2m이며, 1977년에 개금(改金)했다고 한다. 후불탱화는 화기(畵記)를 볼 때 1900년(광무 4) 수영승호(繡璟承琥)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불단을 향해 오른쪽에 있는 신중탱(神衆幀)과 감로탱(甘露幀) 역시 1900년(광무 4)에 조성되었다. 왼쪽의 지장탱(地藏幀)은 1908년(융희 2년) 금어(金魚) 계은봉법(繼恩鳳法)에 의해 조성되었다. 법당의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불단의 상부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아 내부의 장엄을 더했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1773년(영조 49, 건륭 38)에 조성된 범종 1구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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