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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한

정치인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877년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금산리에서 출생하여 8세부터 15세까지 한문 수학을 하고, 25세의 젊은 나이로 1902년 강릉 참봉이 되었다. 1905년 여주여흥학교의 설립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여주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09년 여주보통학교 훈도로 임명되나, 한일합방으로 여흥학교가 일본인에게 접수되었다. 이후 39세부터 45세까지 기독교 감리교회의 목회활동을 하고, 45세부터 66세까지 이천, 충남 홍성군 갈산, 삽교 등지에서 교역에 힘썼다. 1943년 8월 교역에서 은퇴하여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여주군 지부장으로 피선되었고, 1947년 8월 민족대표자대회 여주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동년 10월 대동청년단 여주군단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48년 5월 여주군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동년 6월 대동청년단의 경기도단장과 동년 12월 국회 일민구락부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또한 1952년 11월 자유당 여주군 당위원장, 1953년 자유당 최고고문까지 지냈다. 1957년 80세의 고령임에도 여주체육회 고문을 지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59년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묘지는 여주군 능서면 광대리 자산에 있고, 저서로 『백소시집(白蘇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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