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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1928년 흥천면 대당리에서 성종대왕의 제11왕자 경명군(景明君)의 15세손인 이남훈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942년 여흥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제일중학교에 다니다가 부친상으로 중퇴하였다. 흥천면 이상남 부면장의 주선으로 면사무소 사환으로 취직해 호적계 임시직 5년을 거쳐 1947년 흥천면 병사계의 지방서기를 지낸 후 1957년 여주군청 내무과 지방주사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1963년에 경기도 내무국 지방과 서무담당, 1970년 기획관리실 감사담당관을 역임했다. 1971년 관광운수과장 등을 거쳐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후 1977년 48세의 나이로 양평군수가 되었다. 영상자료를 이용해서 군정보고회를 개최하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군민화합의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구태의연한 태도로 업무에 임하던 공무원들에게 큰 경종을 울렸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여주군수로 재직할 때는 영동고속도로 주변의 농촌주택 개량과 시범농가 조성을 계기로 10개면마다 새마을 시범농가 확대사업을 추진하였다. 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과 코카콜라 공장을 유치하였으며, 흥천면사무소와 여주군 청사의 개축 및 여주군에 필요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탁월한 행정력을 발휘하였다. 한편 신륵사 관광단지 조성과 국책사업인 영릉 성역화 사업을 연계시켜 여주읍 발전계획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여주군수 이임 후 경기도 민방위국장과 정책연구관, 평택군수 등을 지내다가 1985년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였다. 퇴직 후에는 기호농지개량 조합장에 취임해서 복지농정에 헌신적으로 소임을 다하였다. 1995년 70세로 돌아가 흥천면 대당리의 선산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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