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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곽종석

1915년 여주군 강천면 간매리에서 곽재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에 한학(漢學)으로 시작해 8세 때 여주 보통학교를 거쳐 배재학당에서 수업하고, 일본 풍국 고등학교를 유학하였다. 1935년 광주군청에서 공직을 시작해 1944년 여주군에 부임하였다. 해방이 되던 1945년에 이웃한 양평군의 청년 수십 명이 강(姜) 군수 전임지의 원한 관계로 난입해서 관사와 청심루를 불태우자 민심이 매우 흉흉하였다. 이때 치안 유지를 위하여 경찰서장과 더불어 각 읍면을 순회하면서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선도 강연회와 위안 연예행사를 열었으며 일제강점기의 징용에서 귀환하는 장정들을 수원역까지 직접 나가 환영하는 등 민심 안정에 최대한 노력하였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6개월간 군수 서리를 맡아 소실된 여주초등학교를 문교부 보조를 받아 2층 교사로 개축하였다.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0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치열한 경합을 벌이자, 여러 후보들을 설득하여 원용한(元容漢)이 당선되게 하였다. 그리고 숙원인 여주대교 공사를 착공 하지만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는데, 9·28수복이 되어 미8군의 도움을 얻어 임시 목교(木橋)를 가설했으나 대홍수와 해빙기로 인해서 유실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5·16군사정변 후 예산을 확보하여 결국 여주대교를 준공시켰다. 또한 전국 최초의 지방도시 상수도 공사를 준공하여 군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 1958년 여주군수로 부임하여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수분지족(守分知足)의 신념으로 항상 솔선수범하고 군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이후 중앙 당국의 보조로 여주복지회관, 금사, 점동, 개군, 강천면의 사무소와 여주초등학교의 신축 공사도 시행하였다. 그리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주요 면(面)마다 시장을 개설하였고, 6·25전쟁 희생자의 위령탑도 건립하여 순국선열의 현창(顯彰)에도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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