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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여주 출신으로 1919년 여주군 대신면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여주군에서는 4월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경성농업학교 학생 원필희는 천도교측의 지시에 따라 여주군의 독립만세운동 책임자로서 각면을 순회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태극기를 만들어주며 시위운동을 벌이도록 계몽하였다. 이어 4월 2일 북내면 장암리에서 원필희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또한 같은 날 여주읍내에서도 1,0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내를 시위 행진하였다.

대신면 윤촌리(潤村里)에 거주하던 황재옥은 이러한 인근지역의 시위운동에 자극을 받아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에서도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4월 3일 자기 소유의 밭에서 동리 사람 수십 명을 규합하여 횃불을 올리고 시위를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2000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200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4 ;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1 ;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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