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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태

평남 영변(寧邊) 출신으로 이인영의진에 가담하여 경상·충청·경기·황해도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충청도 충주 노은면(老隱面) 사금광에서 채광에 종사하고 있던 한원태는 반일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음력 8월 이인영의진의 선봉장 정봉준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의병진의 종사(從事)로서 경북 문경·청풍, 강원 원주, 경기 여주·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1907년 9월 충북 충주군 과현(果峴)에서 동지 40∼50명과 함께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이후 황해도 토산군(兎山郡) 황곡(黃谷)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의진이 붕괴되자 잔존 병력을 수습하여 정봉준과 함께 원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경기도 포천으로 들어가 1908년 음력 정월 초 이인영의 좌군장(左軍將) 신명재(申明在)에게 투신하여 종사의 일을 맡았다. 그러다가 같은 해 음력 2월 8일 김창식(金昌植)과 같이 양총 25자루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에 들어갔다가 피체되어 1908년 6월 6일 평리원에서 유형 1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9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3 ;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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