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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서

강원도 화천(華川) 출신으로 김춘수(金春洙)의진에 가담하여 경기·강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 직후 대일항전을 결심하고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가던 중, 양주군 강릉천(江陵川) 부근에서 김춘수의진에서 활약하고 있던 이성원(李成元)·김성관(金成寬) 등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로부터 “나라의 정세가 위급하니 남아가 이런 때를 당하여 어찌 안연하게 이를 볼 수 있으리오. 그대도 역시 참가하여 일본인들을 배척하고 나라 일을 같이 하자”고 권유하자 김춘수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김춘수 의병장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들과 같이 경기도 양근·포천(抱川)·가평(加平)·지평 등지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07년 10월 1일 여주 천양(川陽)에서, 같은 달 22일에는 강원도 홍천군 남창(南倉)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8년 4월 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종신유형(流刑)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9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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