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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선

여주 사람으로 정용대(鄭用大)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러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식민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항일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이학선은 이 시기인 1908년 음력 2월 정용대의진에 투신하여 소대장으로 활약하였다. 대한제국군의 정교(正校) 출신인 정용대는 군대해산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스스로 창의좌군장(倡義左軍將)을 칭하고 수백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경기도 적성(積城)·양주(楊州)·풍덕(豊德)·교하(交河)·통진(通津)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차례에 걸쳐 접전하는 등 지속적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정용대의진에 가담한 이학선은 같은 해 음력 3월까지 동지 수십 명과 무장하고 주로 경기도 교하·풍덕·김포(金浦)·통진·부평군(富平郡)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8년 10월1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9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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