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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문

여주 사람으로 1919년 4월 3일 여주군 북내면에서 이원기·원필희·조경호 등 학생 주동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현암리·장암리·덕산리·와룡리 등 인근 마을주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와 선언문을 배포하고 당우리에 있는 공북학교에 모여 8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가 피체되었다.

이해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공소하여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90도로 감형되었으나, 다시 상고하여 8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8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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